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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의 시세계 민들레 시학(詩學)
/ 정영자
사랑과 간구, 깨달음과 찬미, 참회와 기도시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해인수녀의 시는 민들레의 詩學이며 친구의 엽서같다.

그의 시에는 축복과 기쁨, 그리고 평화와 안식이 있다. 종교시인이 가지는 기도생활이 그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일상의 삶 속에서 가지게 되는 우정과 고독들이 투명한 시의 들판을 적시고 있다. 감사와 기쁨, 기도와 동심, 사랑과 우정, 그리고 식물성 이미지의 풋풋하고 싱그러운 분위기가 그의 시 특성을 이루고 있다. 시집, <민들레의 영토> (카톨릭출판사,1976) <내 혼에 불을 놓아> (분도출판사, 1979),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분도출판사.l983), <시간의 얼굴> (분도출판사, 1989)을 발간하여 많은 독자층을 가진 그의 시의 매력은 단순, 진솔, 투명, 사랑, 기도가 있기 때문이다.
 

박두진은 이해인 수녀의 감정적 진실에 놀라고 감동하여 그에게 있어서 "시는 하나의 찬양이며 영혼의 법열 혹은 그 아픔의 고백이며 그 모두를 바로 신에게, 그리스도에게. 영원한 구원의 주에게. 하느님에게 바치는 불사르는 향불이요 재물이요 꽃떨기요 눈물이요 무릎꿇음인 것이다” 라고 하였고 구상은 미국 현대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과의 공통성을 들었다. 즉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접한 기장 사소하고 무상한 사물이나 인정을 불멸과 무한 즉 영원 속에다 연결하려는 끊임없는 지향과 노력과 성취를 그녀들의 시가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김승희는 이해인 수녀의 시집<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와 <시간의 얼굴>에 대한 시 세계를 통하여 반달 의식, 보름달 지향의식을 말하고 있다. 결핍된 존재가 충족된 존재로 변신하려는 끝없는 노력, 아니면 그에 합일하려는 귀의의 몸짓이 바로 빈 달의 숙명적 궤도인 것이며, 그 궤도에서 느끼는 한 영혼의 고통, 내밀한 기쁨, 혹은 배고픔과 기다림과 절망과 찬미를 말하고 있다. 또한 '마주 앉은 화법의 이인칭을 지항하는 서정적 연시풍의 화법’은 현란하고 난해한 시를 외면하고 있었던 새로운 독자층의 확보를 원할하게 하는데 기여 하였다. <민들레의 영토>는 불안과 방황 속에서 그대를 찾는 사랑과 기도의 시집이다. 젊음의 풋풋한 설레임과 그대에게로 다가가는 한량없는 모자람과 헌신이 있다.

 

가을 산은
내게 더 가까이 있고
더 푸르게 있다

슬픔 가운데도 빛나는
내 귀(貴)한 연륜

시시로
높은 산정 오르며
생각했지

눈 감으면 보이고
눈 뜨면 사라지는 나의 사랑

-〈가을 산은〉에서

나는
산에서 큰다

언제나 듣고 싶은
그대의 음성
대답 없는 대답
침묵의 말씀

고개 하나
까딱 않고
빙그레 웃는 山

커단 가슴 가득한
바위
풀향기
덤덤한 얼굴빛

침묵의 聖者
인자한 눈빛으로
나를 달래다
호통도 곧잘 치시는
오라버니 山

오늘도
끝없이
산에서 큰다.

-〈山에서 큰다〉 전문

산이
살아서 온다

저만치 서 있다가
나무 함께 조용히
걸어서 온다

창은
움직이는 것들을 불러 세우고
서서히 길을 연다
꿈꾸게 한다.

-〈나의 창은〉에서

 

산은 그에게 있어서 항상 푸르고 든든하게 기다리며 지켜주는 인자한 성자이기도 하고 잘못을 니무라는 오빠와 같은 존재이며, 산에서 절대자인 신의 사랑, 세속적인 낭만의 절대적 사랑을 찾고 성찰하며 완숙한 신앙인의 길로 가는 도정이었다. 그는 그의 시집 후기에서 "이 시집에 담긴 노래들을 나와 함께 사랑을 나눈 여러 형제와 이웃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너〉 없이 태어날 수 없던〈나〉의 시는 또한 〈우리〉의 것도 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여 연시풍의 당신을 향한 기도같고 편지같은 직설법의 방법을 취하고 있다.

 

기도인의 자세는 솔직 ·담백한 것이 고해의 근본이며 자신의 기원적이고 낭만적이며 서정적인 사랑과 우정은 연가풍의 호소력이 있는 편지글같은 기원으로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시는 따뜻하다. 내일이 있는 꿈이 있고 한숨 이전에 감사와 기쁨이 있다. 이러한 것이 다른 시인과의 차별성이기도 하다. 한국 전통시의 특성이 정한의 세계이면서 절대고독을 노래해 왔지만 이해인 수녀의 시에는 저녁 강가에서도 감사와 기쁨의 노을이 함께 하고 있다.

 

바람 따라 파문 짓는
저녁 강가에

노을을 걸치고
앉아 있었다

등 뒤에서 무거웁던
시간을 잊고

피곤한 눈길을
강물에 적시면

말없이 무한정
말없이 깊은 강

고마운 오늘을
출렁이면서

기쁨의 내일을
가자고 한다

따스한 강물에
흔들리는 노을

나도 자꾸만
가고 있었다

-〈저녁 강가에서〉 전문


두번째 시집, <내 혼에 불을 놓아>도 사랑과 기도의 시집이다. 이해인수녀는 시집 후기에서 "시보다 더 좋은 사랑과 기도의 표현을 아직 찾지 못하였으며 그것은 가장 좋은 수련의 방법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첫시집 <민들레의 영토>보다 훨씬 더 뜨겁고 간절한 사랑의 시가 나타나고 있다.

 

한 여름 내내
태양을 업고
너만 생각했다.

이별도 간절한 기도임을
처음 알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잊어야 할까

내가 너의 마음 진하게
물들일 수 있다면

네 혼에 불을 놓는
꽃잎일 수 있다면

나는
숨어서도 눈부시게
행복한거다.

-〈봉숭아〉 전문


"이별도 간절한 기도임을/처음 알았다" 는 그의 진솔함은 떠난 이의 평화와 행복을 기도하며 그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하여 더욱 기도의 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남조 시인의 사랑을 위한 기도시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는 이러한 시풍은 에로스적인 사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잊어야 하는 것이 문제되는 세상에서 너의 마음을 진하게 물들일 수 있고 너의 혼에 불을 놓는 꽃잎일 수 있는 시적 화자는 숨어서도 눈부시게 행복하다는 자의식으로 충만하다.

 

여름철 지천으로 피고지는 봉숭아의 정열적인 꽃피움을 여름철 내내 그대 생각으로 간절한 이별의 아픔을 봉숭아 물들이기의 붉게 타는 사랑의 자세로 승화시키고 있다. 직설적인 표현기법이지만, 그의 시는 간결하다. 때문에 영롱한 사랑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가을을 노래하는 시가 무척도 많다. 특히 연작시가 많은 〈가을편지〉는 더욱 그렇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며 사랑의 연시를 기도로 옮은 그의 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 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노래〉에서

 

세번째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에 오면 깨달음과 정진을 통하여 삶의 평화와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꽃에 관한 시가 많을 뿐만 아니라 〈내가 뛰어 가던 바다는〉의 연작시를 통히여 깨달음의 세계를 보여주고 그러한 구도적 자세는 불교적인 것과도 관계가 깊다.

 

바다에 와서
빈 배를 보면
왜 이리 기쁜가

빈 마음으로
떠날 수 있음은
얼마나한 아픔다움인가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3〉에서

답답한 마음
바다에 내려 놓고
탁 트인 마음 들고 온다

가득 찬 욕심
바다에 벗어 놓고
빈 마음 들고 온다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5〉 전문

바다에 가지 않아도
항상 내 안에는
바다가 출렁이네

눈을 들면
수평선

파도로 뛰는 마음
늘 푸르게 살라 한다
물새로 깃을 치는 마음
늘 기쁘게 살라 한다

-〈내가 뛰어가던 바다는 ·1O〉 전문

 

이해인 수녀의 깊은 사유는 바다에서 시작되고, 바다를 통한 깨달음의 세계는 생활시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불교철학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비어 있는 것에 대한 성찰과 애정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해인수녀에게서는 특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국인의 무의식 깊게 불교사상의 내재된 깨달음을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답답한 마음/바다에 내려 놓고/혹은 가득찬 욕심/바다에 벗어 놓고 빈 마음 들고 온다"는 정진의 세계가 기도적인 시의 내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참았다가
참았다가
터지는 웃음소리
.…·(중략)
까르르 쏟아지는
찬란한
웃음소리
-〈석류〉에서

 

동시풍의 시가 많이 보이는 것은 1970년에 <소년>지에 〈하늘>〈아침〉이 추천되어 동시인으로 출발한 그의 동심시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인 수녀는 1964년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회 수녀로서 입회하여 1975년에 필리핀 세인트 루이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의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 동시집 <엄마와 분꽃> (1992)외에 산문집 <두레박> (1986), <꽃삽> (1994), <사랑할땐 별이되고> (1997)가 있다. 그외에 기도시집 <사계절의 기도> (1993)가 있으며, 한ㆍ영시 시선집 <다시 바다에서> (1998)가 있다. 이해인 수녀의 정진과 깨달음의 세계관은 한국의 전통적인 음식문화로 찾아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독 속에
남 모르게 익어가는
간장 된장 고추장

때가 될 때 까진
갑갑해도
숨어 살 줄 아네

수도원은
하나의 커다란 장독대

너도 나도 조용히
독 속에 내뿜는
저마다의 냄새와 빛

더러는 탄식하며
더러는 노래하며

제 맛을 낼 때까진
어둠 속에 익고 있네
즐겁게 기다리네

-〈수녀ㆍ2〉 전문


간장ㆍ된장ㆍ고추장이 독 속에서 때를 기다리며 제 맛을 낼 때까지 기다리는 즐거움에 대한 생활시는 수녀로서의 구도의 길과 같다. 이와 같은 가장 가까운 일상의 생활시로는 〈빨래〉,〈설겆이〉,〈명상일기〉등이 있다. 구상시인은 이해인 수녀의 시를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무한성ㆍ영원성과 유사하다는 점을 들었고 이해인 수녀도 흰 옷올 즐겨 입으며 평생을 고독과 은둔 속에 혼자 살다간 에밀리 디킨슨에 관하여 얘기하고 있다. 친구에게 대화하는 듯한 친근한 시를 아우에게 보내는 편지에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해인 수녀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즐겨 읽었다고 볼 수 있겠다.

 

정다운 3월아, 어서 들어오렴
내 너를 만나 얼마나 기쁜지
난 네가 참 보고 싶었어
어서 모자를 벗으렴.
빨리 달려오느라 얼마나 숨이 차겠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나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가자
난 네게 할 얘기가 많단다


위의 시는 이해인 수녀가 인용하고 있는 디킨슨의 시이다. 관습의 틀을 깨고 모더니즘을 싹틔운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은둔하여 생전에 시 1O편 만을 출판하였다. 소외ㆍ죽음ㆍ사랑ㆍ자연의 소재로 인생에 대한 깊이와 정열을 가지고 현대적인 감각 묘사의 방법을 선택하였으며 남성중심적 제도권을 거부하며 대학도 중퇴하였으나 그녀의 사후 30년에 1천7백75편 시 전집을 출간하여 위대함을 인정 받았다.

 

나는 무명인인데 당신은 누구?
당신도 무명인?
이것 참 잘 만났구려

 

위와 같은 대화하는 듯한 디킨슨의 시는 백 년 후 한국의 수녀 시인에게 영향을 깊게 준 것같다.

 

제가 누구인지
당신이 누구인지
우리의 만남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오늘도 직접 당신께 듣고 싶사오니
어서 말씀하여 주소서

-〈생활성서〉 전문

 

위의 시는 이해인수녀의 시이다. 디킨슨의 위에 든 시와 비슷한 이미지이다.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오르는 빛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에서

 

김승희가 말한 차오르려는 반달의식이 있는 이 시야말로 정진과 기도로 가는 끝없는 수련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네번째 시집 <시간의 얼굴>은 연작시가 대부분이며 깨달음과 소망의 시집이다.

 

때가 되면 아낌없이
보랏빛으로 보랏빛으로
무너져 내리는 등꽃의 겸허함을
배워야 하리
-〈등꽃 아래서〉에서

내가 저녁기도를 바치면 어느새 내 옆에 와서 시편을 읊는 바다. 더 낮아지라고 한다.
더 낮은 목소리로 기도하며 겸손의 해초가 자라는 물밑으로 더 깊이 내려 가라고 한다.

-〈해질녘의 바다에서 ·8〉 전문

혼자서는
웃는 것도 부끄러운
한 점 안개꽃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빛이 되고
소리가 되는가

장미나 카네이션을
조용히 받쳐 주는
기쁨의 별 무더기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마름은
숨길 줄도 아는
하얀 겸손이여
-〈안개꽃〉 전문


이해인 수녀는 본인 자신이 겸허하고 성실한 자세로 시를 쓰고 싶으며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찬미와 감사, 참회와 소망의 언어라고 시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 그에게 있어 시는 구원의 십자가이며 거짓없이 살고 싶어 애쓰는 한 수도자의 기교 없는 육성이다. 또한 그의 시는 짐언과도 같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때문에 그의 시는 기도문이다.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시가 구원의 시를 말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식물성 이미지와 함께 부끄러움이 있고 함께 어울리는 화합과 사랑의 나눔이 있으며 겸양의 동양적 미덕이 바탕되고 있다.

 

"혼자서는/웃는 것도 부끄러운/한 점 안개꽃//한데 어우러져야/비로소 빛이 되고/소리가 되는가" 혼자서는 웃는 것 조차도 부끄러운 한 점 안개꽃을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빛이 되고 소리가 되는 안개꽃의 특성을 예리하게 노래하면서도 장미나 카네이션을 조용히 받쳐 주는 기쁨의 별무더기를 표현하여 현대인의 자기중심적 시각을 남을 받쳐주는 조연의 역할에 대한 아름다움과 역할분담을 표현하고 있다. 이해인 수녀의 상상력은 자연스럽다.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마름을 숨길 줄도 아는 하얀 겸손의 미덕을 〈안개꽃〉에서 시화함으로써 교시적 기능을 담은 문학의 쾌락적 기능을 분명하게 그리고 서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해인 수녀의 시는 모두 편지쓰기 형식이다. 그의 시는 모두 편지의 내용이다.

 

네가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가
발견하고 사랑하며
편지를 쓰는 일은
목숨의 한 조각을
떼어 주는 행위
…(중략)
사계(四季)의 바람과 햇빛을
가득히 담아
마음에 개켜 둔 이야기 꺼내
아주 짧게라도
편지를 써야 하리
실아 있는 동안은-
-〈편지쓰기〉에서

 

이해인 수녀는 스스로 자신의 시를 " '민들레'에서 '반달'까지의 틀을 못 벗어 버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민들레시학이라고 일컫고 싶을 정도로 그는 한국땅 어디에라도 작은 땅 조금의 햇볕만 있는 곳이면 지천으로 피어있는 평범하고 소박한 민들레를 예찬하고 있다. 수필 〈민들레의 연가>에서 그가 민들레시학의 특성을 가지게 된 동기가 잘 나타나고 있다.

 

인간 모두를 사랑하되 하나를 갖지 않고 하나인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초연히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는 일에도 회의와 좌절, 착각 속에서 방황하던 어느 날 광안리 수녀원을 산책하던 가운데 극히 좁다란 돌틈을 비집고 당당히 피어난 노란 민들레를 보고 “아, 어쩌면…”하고 솟구치는 기쁨에 몸을 떨면서 민들레의 정다운 목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넌 왜 고민하니? 나처럼 살면 되잖아. 네가 원하기만 하면 좁은 땅에 앉아서도 모든 이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어”라는 얘기였다.

 

이와 같은 민들레의 꽃핌에 감격한 이해인 수녀는 지신이 안주해야 할 땅을 확인시켜주고 사랑의 슬기를 깨우쳐 준 민들레처럼 의연히 앉아 해를 보며 살고 담담한 표정 밑에 뜨거운 언어를 감춘 기다림의 결연한 민들레사상을 자신의 노래축으로 삼게된 것이리라. 절대신앙마저도 회의에 빠져든 날들 속에서 흔연히 일어설 수 있는 은총의 놀라운 기적은 위대하고 거창한 것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흔하고, 비좁은 땅에 제멋대로 꽃 피우지만 샛노란 희망과 민들레씨앗의 바람에 의한 자유와 낭만으로 이해인 수녀의 사상과 서정적 대중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부산광역시 수영구의 성 베네딕도 수녀원은 민들레 꽃처럼 작고 소박한 노래들을 많이 탄생시켜준 '민들레의 영토’ 이며 좀더 작은 물건을 가지고 크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준 민들레 교훈의 산실이기도 하다. 첫시집 <민들레의 영토>의 표제시가 된 '민들레의 영토' , 제2시집<내 혼에 불을 놓아>에서의 '민들레' , 제3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에서도 '민들레'시가 있으며 '봄 편지'에서도 민들레가 노래되고 있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애처로이 쳐다보는
인정의 고움도
나는 싫어

바람이 스쳐가며
노래를 하면
푸른 하늘에게
피리를 불었지
-〈민들레의 영토〉에서

은밀히 감겨간 생각의 실타래를
밖으로 풀어내긴 어쩐지 허전해서
차라리 입을 다문 노란 민들레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멀어
하얗게 머리 풀고 솜털 날리면
춤추는 나비들도 길 비켜 가네

꽃씨만한 행복을 이마에 얹고
바람한테 준 마음 후회 없어라
혼자서 생각하다 혼자서 별을 헤다
땅에서 하늘에서 다시 피는 민들레
-'민들레' 전문


좁은 땅에서 꽃으로 피어 앉은뱅이 몸으로는 갈 길이 멀어 하얗게 머리 풀고 솜털도 날리며 다시 한번 하늘에서 피는 민들레의 숙명은 어떻게 보면 시인 자신의 운명이며, 그가 처한 민들레의 영토에 대한 의지와 자부심, 그리고 바람과 하늘에 바친 말없음의 간절한 기원이기도 하다. 나무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일년초 꽃나무를 노래하며 생명의 외경과 피고 지는 이별과 탄생의 연속을 영롱한 감사와 명쾌한 의기로움으로 노래하고 있다. 그의 반달의식이 완성을 지향하는 깨달음과 구도의 자세이기도 하지만 그는 보름달보다 반달을 선호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차오르면/ 할 말을 잊는 것처럼/ 너무 빈틈없이 차올라/나를 압도하는/달이여"(〈보름달에게 ·2〉에서)

 

빈틈없이 차오른 보름달보다 차 오르기를 기원하는 보름달의 의식이 이해인수녀의 시적 지향이며 사랑의 기도이며 간절함이다. 민들레시학이 가지는 보편성ㆍ대중성ㆍ자유ㆍ이상의 특성 외에 그에게는 〈가을편지〉 연작시가 많다. <내 혼에 불을 놓아>에 '가을편지' 12편은 모두 사랑의 시이며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의 '가을편지' 30편도 모두 연가풍의 사랑시이며 <시간의 얼굴>의 '가을편지' 34편도 연가풍의 잠언과 같은 일기체 글이다.

 

그 푸른 하늘에
당신을 향해 쓰고 싶은 말들이
오늘은 단풍잎으로 타버립니다

밤새 산을 넘은 바람이
손짓을 하면
나도 잘 익은 과일로
떨어지고 싶습니다.
당신 손 안에
-〈가을편지 ·1〉 전문. 두번째 시집에 있는 시

말은 없어지고 눈빛만 노을로 타는 우리들의 가을, 가는 곳마다에서 나는 당신의
눈빛과 마주칩니다. 가을마다 당신은 저녁노을로 오십니다.
-〈가을편지 ·2〉 전문, 세번째 시집에 있는 시

오늘은 빨갛게 익은 동백 열매 하나 따 들고 언덕을 오르며,
당신을 향한 나의 그리움 또한 이 작은 열매처럼 잘 익어서 ‘톡’하고 쪼개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가을편지ㆍ·19〉 네번째 시집에 있는 시


〈가을편지〉에 보인 연작시는 모두 연가풍의 시로써 산문시는 일기문과 같은 잠언 형식의 글이다. 언제나 일상의 직접적이고 단호한 삶의 철학이나 상상력의 무한한 서정성의 노래는 나즉하게 대화하는 정다운 사람과의 대화같기도 하고, 간결한 편지줄글같기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에대한 진정한 기도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이해인 수녀의 시 특성이다. 민들레의 영토인 수녀원에서 이 땅의 고통과 가난한 사람을 위한 그의 다정하고 우정어린 사랑의 잔잔한 기법은 대중성과 서정성을 획득하면서 믿음과 희망에 대한 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정영자 (신라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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