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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시
가정조선 1986년 2월 具仲書 / 구중서
베스트셀러로 도합 40만 부나 팔린 이해인 수녀의 3권의 시집은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 것으로는 우리 나라시집 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이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너무 단순하고 소박한 詩語들

 

이해인 수녀의 <민들레의 영토><내 혼(塊)에 불을 놓아><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등 세 권의 시집이 근래 서점 가에서 오래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시집들은 모두 가톨릭계 출판에서 간행되었다. 이 출판사들은 일반 서점가와 잘 소통되지 못한다. 이 시집들을 신문의 서적 광고란에 선전하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서점가에서 잘 팔리기 시작해 벌써 2년째인가 베스트셀러로 알려지고 있다. 이해인 수녀 자신은 '나의 시'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독백을 드러낸다. "제대로 옷을 못 입어 볼품없어 보이고, 써도 써도 끝까지 부끄러운 나의 시는 나를 닮아 언제나 혼자서 사는 게지. 맨몸으로 펄럭이는 제단 위의 촛불 같은 나의 언어, 나의 제물.('내 혼에 불을 놓아'에서)" 이렇게 외로이 혼자 읊조리는 언어라고 하는데 <민들레의 영토>가 가톨릭 출판사에서 19판, <내 혼에 불을 놓아><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가 분도 출판사에서 각각 15판을 발행해 세 가지 시집이 도합 40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가톨릭 신문> 1986년 1월19일자 보도)

 

이 기록은 아마도 우리나라 시집 출판 사상 단기간을 기준으로 따지면 가장 많은 발행 기록일지도 모른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과연 무엇 일까. 박두진 씨는 <민들레의 영토> 머리말에서 '시인이 되기 위한 시로서가 아니고, 시인으로서의 시가 아닌 데에 그의 시의 일단의 순수성과 그 동기의 초월성이 있다'고 했다. 홍윤숙 씨는 <내 혼에 불올 놓아> 머리말에서 '대패질도 기름칠도 하지 않은 마구 깎아 낸 원목(原木) 같은 생명감'이라고 했다. 구상 씨는 '그녀의 영글어 가는 영혼의 모습이 너무도 장하고 아름다와서 눈시울을 적신다. 산속의 샘물 같은 그녀의 시편들이 고갈되고 혼탁한 오늘의 우리의 영혼을 축여 주고 씻어 주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기를 합장 한다'고 했다.

 

필자의 견해로서는 위의 찬사들이 그것들대로 근거가 있다고 보면서도, 이해인 수녀의 시가 한국 시문학계에서 반드시 높은 수준으로 등급을 매겨 평가되어야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해인 수녀의 시가 우주 삼라만상의 존재 근원인 하나님에 대한 궁극적인 사랑을 심오하게 노래하고 있지만, 그녀의 시에 동원되는 언어의 대부분은 너무 단순 소박한 상태의 것이다. '이 세상에 이해될 수 없는 진실은 없다'는 말로 난해시를 비판하는 관점도 있지만, 인간의 심성과 지성이 고도로 예민해져 있는 현대 사회 상황에서는 보다 고차원적으로 정련(精鍊)되고 밀도를 갖춘 시어(詩語)가 동원되어야 할 당위성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경우의 시는 물론 대중 독자에게 수용되는 면에서는 어느 정도의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시들이 한국 현대 시문학계의 질적 성취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의 노래

 

다만 이해인 수녀의 시는 그 나름대로 독특하게 소중한 것일 수 있다. 필자는 이해인 수녀의 시를 대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니카라과의 수도 신부이며 시인인 에르네스또 까르데날의 책 <침묵 속에 떠오르는 소리>를 연상하게 된다. 까르데날은 한 편으로 반독재 운동에 가담한 행동적인 인물로서 그의 시에 혁명적인 주제를 담은 것들이 있다. 그런데 동시에 그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영혼의 문제에 깊이 들어간 명상가이기도 하다. 이해인 수녀의 시가 하나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데 그 발상은 사뭇 인간적인 형태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그녀의 시는 상투적이고 관념적이라거나 호교적(護敎的)인 종교시가 아니고, 신선한 인간의 육성으로 들리게 되는 것이며, 이 점이 그녀의 시를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을 동일시하는 까르데날의 다음과 같은 설명을 보자.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리고 사람도 또한 사랑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된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열 욕구 애정 본능 및 모든 인간적 갈망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불길을 북돋우게 하는 땔감이다.

 

실제로 사람의 전존재가 이런 땔감이다. 사람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다만 대상이 다를 뿐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세상 만물을 포기하는 것은 그것들을 나쁜 것으로 생각해서가 아니요 세상 만물의 아름다움이 하도 기가 막혀서 그것들을 만드신 창조주를 사랑하는 것이다. 성(性)을 만든 분도 하나님이고 부드러운 포옹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고, 관능과 정열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분에 대한 사랑만이 늙지 않는 사랑이며, 영원히 마음 변하지 않고 또 죽지 않는 연인은 오직 그분 뿐이다.'

 

내 생애가 한 번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이해인, '해바라기' 연가에서)

 

이해인 수녀의 이 사랑이 곧 뜨거운 신앙의 표현 방법이 된다. 그리고 사랑이 깊을수록 기쁨과 함께 고독과 목마름도 따른다. 또는 해바라기 나팔꽃 바닷가의 빈 배 나무 산, 삼라만상에서도 사랑과 의미를 발견한다. 이 의미들이 풍성한 동산에 결국 독자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이라고 보게 된다. 이것은 이상한 일도 염려할 일도 아니며, 관념적인 순수시나 사회적인 현실 의식의 시가 '삶과 궁극의 구원(救援)'까지를 내다보게 하는 하나의 신선한 충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정조선 1986년 2월 具仲書 - 문학평론가·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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