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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 영토에서 -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여성자신 1984.10 / 장석주
여기 한 시인이 있다. 영원을 향해 은혜롭게 기도하는 한 수녀 시인의 청정한 목소리가 목마른 사람들을 촉촉히 적시고 있다. 이해인의 시집들, <민들레의 영토>, <내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며 10만명 이상의 독자에게 그리움의 가슴을 전달해준 그녀의 작품을 통하여 수녀 시인 이해인의 사랑과 종교의 세계를 알아본다.
 

영원에의 그리움에 가슴 앓으며 고독과 슬픔을 종교시로 승화시킨다

 

여기 한 시인이 있다. '슬픈 일이 생겨도 그저 은혜로운 가을날'에 '몰래 숨어 들어온 감기 기운 같은 영원에의 그리움'에 가슴을 앓으며, '한 켤레의 고독을 신고 정갈한 마음으로 들길을 걷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듯 청정한 간구와,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의 사랑을, 종교시의 전통이 일천한 이 땅에 종교적인 테두리를 방패로 한 순수 긍정적인 소명감적인 헌신의 노래. 그러한 기구이기보다는 인간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깊은 갈등, 종교적 헌신으로 도달될 수 있는 영원한 법열과,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정직한 고민, 고독감, 슬픔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종교시로 승화시키고 있는 시인이 있다.

 

이해인이 바로 그 시인이다. 내가 최근에 입수한 이해인의 <민들레의 영토>가 11판. <내 혼에 불을 놓아>가 8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가 5판을 찍고 있다. 시집은 안팔리는 책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한국의 출판풍토에서 이것은 분명 '놀랄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인기작가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문인주소록에조차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무명의 한 수녀가 쓴 시집이 독자들에게 '조용한 충격'을 가하면서 그렇게 폭넓게 읽혀져 왔다는 것은 이 땅의 문화적 전통과 풍습에 비추어 보더라도 비상한 일이며, 가히 '신화'적인 일이다.

 

나는 이것을 '이해인 신화'라고 이름 붙이려 한다. 그렇다면 그 '이해인 신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떤 요인들이 숨어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이해인 시의 어떤 매력이 그렇게 오래 지속적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을까. 먼저 이해인 수녀는 어떤 사람이며, '이해인 신화'를 가능케 한 그녀의 시집들의 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일의 순서일 것이다. 이해인은 누구인가. 이해인은 서른 아홉 살의 수녀이고, 본명은 이명숙이며, 하도 새초롬해서 친구들이 붙인 '석고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소아시아의 순교성인인 클라우디아라는 수녀명을 갖고 있으며, <민들레의 영토><'내 혼에 불을 놓아><'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라는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며 지금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에 다니는 대학원생이기도 하다.

 

그녀는 서울역이 내려다보이는 동자동 언덕에 있는 성분도병원 수도원에 살고 있다. 그 병원은 6.25때 전쟁의 폐허에서 병들어 신음하는 피난민들을 치료하기 위해 세운 자선병원이었는데, 지금은 산부인과와 소아과만 있는 병원으로 수녀들이 운영하고 있다. 거기서 이해인 수녀는 주로 대학원 과정의 공부에 전념하며 한달에 한 번 정도 수도생활에 관심을 갖고 모여서 기도하고 성가도 부르고 묵상도 하는 젊은 여성들의 모임에 참가한다. 그녀의 오빠의 기억에 의하면 이해인 수녀의 가족은 아버님이 납북되시고 몹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창경국민학교에 다니던 이해인 수녀는 원남동에서 가회동까지 꼭 걸어 다니며 책가방을 든 채 한쪽 손에는 늘 무슨 책인가를 눈 앞에 높이쳐든 채 길을 걸으면서도 책에 열중하곤 했다고 한다.

 

거기에다 시인이신 이모부 이태극씨와문학청년이던 오빠 영향을 받아 일찍부터 문학에의 꿈을 남몰래 키우며 한편으로는 어머니의 엄격하면서도 깊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수녀에의 꿈을 갖게 된다. 4남매의 세째인 그녀가 11살 되던 해 숙대 국문과에 다니던 친언니가 깔멜수도원의 수녀가 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과 영향을 받아 여고 1학년 때 언니의 소개로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수녀지원 담당수녀를 만나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수도자가 되고 싶다'라고 제 운명을 결정짓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때 그녀의 오빠는 두 누이가 수녀가 되어 집을 나가는 것에 충격을 받아 문학도 하고 수녀가 되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글로 쓴 동생의 원고를 가지고 명동의 '갈채다방'에 나가 한 문학평론가에게 보였다고 한다.

 

그 글을 꼼꼼하게 읽고 난 그 평론가는, '이형의 동생은 절대로 수녀가 안될테니 안심하십시오. 수녀가 되기엔 개성이 너무 강하고 글재주가 출중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1964년 김천 성의여고를 졸업하고 부산의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 수도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녀는 수녀가 된 개인적인 동기를 '사랑 때문' 이라고 밝힌다. 그녀의 말을 좀더 들어볼 필요가 있다. '수녀가 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느냐고 반문하시겠지요. 그러나 저는 보다 더 사랑의 완성을 지향하고 전적으로 사랑만을 위해 살고 싶었어요!' 그녀가 분명히 말하고 있듯이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 의한 도피'나 수도원을 '개인의 상처나 슬픔을 씻어주는 곳'으로 잘못 생각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녀가 된다는 것은 '결혼하지 않고, 정결하게. 재산을 갖지 않고 청빈하게, 자기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순명하며 사는 삶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생활'이다. 그 과정 역시 단순한 '천사처럼 살고 싶다는 꿈' 만으로는 견디기 힘들다. 보통 6개월간의 지원기, 1년반 동안의 청원기, 2년 동안의 수련기를 거쳐 4년만에 첫서원을 하고, 6년 동안의 유기서원기를 거쳐 10년만에 종신서원을 하게 된다. 종신서원 때의 모습을 그녀의 오빠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수녀들의 성가소리가 천상의 소리인 듯 울리고 너는 제대 저쪽에서 조용히 춧불을 들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문득 눈을 곱게 내려뜬 네 모습에서 너의 지난날을 떠올리고 그만 어처구니 없게도 주책없이 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구나.

 

식이 끝난 뒤 그녀는 활짝 웃는 얼굴로 울고 있는 오빠에게 다가와 '참 별일이네, 오빠가 다 울다니'라고 말했다." 그녀는 수도생활 중에도 시작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고 남모르게 계속해왔다. 그럼 어떻게 그녀의 시들이 비밀스런 서랍에서 나와 세상의 햇빛을 보게 되었을까. "제가 필리핀의 세인트 루이스대학 영문과에 유학 중일때 스위스에 계시던 임남훈 수녀님이 제게 들러서 시를 열심히 쓰라고 격려하셨어요. 그 뒤 귀국한 뒤 제가 김병도신부님께 편지를 해서 제 시 열 몇 편을 시인이신 홍윤숙선생님께 보내드린 게 계기가 됐어요. 홍선생님께서는 제가 있던 광안리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 찾아오셔서 하룻밤 묵으시면서 제 시작노트를 읽으신 후 '내 혼자읽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셨어요. 저는 그때 수녀가 무슨 시집을 내느냐고 극구 반대했으나 임원장수녀님께서 종신서원 기념시집을 하나 묶자고 결단을 내리셨어요. 해인이란 이름은 '소년'지에 동시를 발표 하면서 제 스스로 지은 이름이예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해인은 시를 통해서 '자신의 한계와 막막함 무궁무진한 결핍을 바라보게 되고, 기도하듯 시를 쓴다고 고백한다. 그녀의 시는 신을 향한 절대의 사랑과 인간의 미소함에 대한 겸손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녀가 선택하는 시어들은 어떠한 화려한 일체의 장식성을 폐기하고 있는 그대로의 단순함과 범속함과 정직함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들이 빼어나게 깊고 강한 울림을 주는 것은 무기교의 담백함, 맑고 투명한 서정성. 거짓이라고는 조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함, 거기에 응축된 진실과 열화 같은 사랑이 한데 조화롭게 직조되어 하나의 신선한 충격으로 우리의 의식에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마른 향내 나는
갈색 연필을 깎아
글을 쓰겠습니다

사각사각 소리나는
연하고 부드러운 연필 글씨를
몇 번이고 지우며
다시 쓰는 나의 하루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
단정하고 꼿꼿한 한 자루의 연필처럼
정직하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살아있는 연필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말로
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겠습니다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
당신을 위하여 소멸하겠습니다

- '살아있는 날은' 전문

 

이 시는 이해인의 시세계의 중심이 어디에 놓여있는 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갈색 연필과 나는 일정한 객관적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갈색 연필은 글을 쓰는 나의 행위를 완성시키는 도구이며, 나는 이 갈색 연필의 매개에 의해 하나의 경이로운 생의 지평, '몇번이고 지우며/다시 쓰는' 창조를 통하여 새로운 우주를 열어간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떨어져 있던 창조의 주체인 나와 그 도구인 갈색 연필이 세째연에 와서 돌연 '정직'이라는 삶의 빛나는 가치 안에 서 그 목적의 동일성으로 하나로 통일 수렴된다. 시인은 '예리한 칼끝으로 몸을 깎이어도/단정하고 꿋꿋한 한 자루의 연필'에서 정직한 삶이라는 가치를 이끌어내어 나의 바램과 그것을 합일시켜 시적 울림을 불러 일으킨다.

 

다음에 이어지는 '나는 당신의 살아있는 연필' 이라는 귀절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나와 갈색 연필의 관계는 당신과 나의 관계로 전화된다. 갈색 연필이 나의 도구였던 것처럼 나는 당신의 목적의 성취에 쓰이기를 소원하는 도구이다. 이때 글쓰기란 다름 아닌 거룩한 당신의 빛나는 이념의 별이 내게 부여하는 거룩한 소임에 따라가는 삶의 길, 활동, 궤적이다. 그 삶의 궁극은 '정결한 몸짓으로 일어나는 향내처럼/당신을 위하여/소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살아있는 날'이란 남김없이 자기희생의 길을 기꺼이 가는 인생의 아름다운 도정이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말로/당신이 원하시는 글'을 쓰는 것은 시인에게 부여된 거부할 수 없는 인생의 목적이며, 끝내 추구해야 궁극의 가치인 것이다. 그것을 통해서만 나와 당신의 사랑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어둠이 표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희망이 고갈된 상태, 역사적으로는 비진정한 가치의 억압적인 지배의 시대적 상황,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삶의 바람직한 지향과 추구를 가로막는 장애의 요인, 절망의 암울함을 환기시키는 이미지이다.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그런 어둠 속에서 '빛나는 말'로 글을 쓰겠다는 것은 복음서에서 말하는 기독교적 삶의 명제 '빛과 소금'됨의 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 시에서의 당신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만 님이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 이라고 말함으로 님의 의미를 어떤 특정 대상에 고정 폐쇄시키지 않는 것처럼 기독교적 유일신이라고 한정해서 읽을 필요는 없다. 독자의 체험 배경에 따라 당신은 다양한 의미와 대상이 될 수 있는 개방성을 가진 어사이다.

 

황홀한 아침을 헌신으로 쏟아내는 당신 앞에
나는 몸부림 치며 부서지는
숙명의 파도입니다
-'아침바다에서' 일부

 

왜 나는 당신 앞에서 이처럼 고통스런 몸짓과 해체되는 듯한 아픔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 당신은 '문신같은 그리움을/이 가슴에 찍어 논/ 당신'('봄 아침')이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신선한 뜨락에 피워올린/한송이 소망끝에/내 안에서 종을 치는/하나의 큰 이름은/언제나 당신'('나팔꽃')에서 보면 당신은 나라는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 주고. 그것을 밖으로 이끌어내어 발현시켜주기 때문에 나는,

 

인고의 깊은 땅에
나를 묻어
당신을 위해 꽃피는 기쁨
-'당신을 위해 내가' 일부

 

처럼 그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내 삶의 일체를 희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둠이 깊을수록/잘 보이는 당신'('주일에 나는')이란 표현에 의지한다면 당신은 빛 그 자체이거나 빛속에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일까.

 

즉음보다 갑갑하고 어둡던 시간
당신의 부재로 하여
아픔이 피와 같던 시간
-부활의 아침' 일부

 

당신의 부재는 나에게 어둠과 고통을 함께 가져다준다. 따라서

 

삶의 전부를 은총이게 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의 내일을
기쁨의 은방울로 쩔렁이는
당신 당신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가을편지' 7 일부

 

내 신산스런 삶을 은총이게 하고, 내 매일의 삶을 환희이게 하는 당신을 향한 앎에의 의지, 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지는 너무나 자연스런 바램이다. 그 너무나 자연스러운 바램의 성취가 너무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역설적 고백의 시도 가능한 것이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엄청난 당신보다는
덜 힘든 한 사람을 선택하겠습니다

나의 뜻과는 어긋나는 당신이기에
나는 놀라서 도망치다
신들린 바람

내가 만약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면
사랑이신 당신을 모르고 싶은
죄스런 바램을 어찌해야 합니까
주문 외우며 달아나다
내가 쓰러질 곳 또한
당신 품안일 것을,
-'다시 태어난다면' 전문

 

이것은 역설적인 사랑의 고백이다. 다시 태어나면 '엄청난 당신보다는/덜 힘든 한 사람을 선택하겠다'는 것은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의 돌이킬 수 없는 깊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간곡한 의지의 역설적인 표현법인 것이다. 이 시는 나의 진심을 아무 수식 없이 벌거벗은 그대로 드러내는 '하나의 찬양이며, 영혼의 법열, 혹은 그 아픔의 고백이며, 그 모두를 바로 신에게 바치는 불사르는 향불이요, 제물이요, 꽃떨기요, 무릎 꿇음인 것'이다. 그 역설의 마지막마저 '내가 쓰러질 곳 또한/당신 품안일 것을'이라는 귀절에서 보듯이 당신의 품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역설인 것이다.

 

가을엔 물이 되고 싶어요
소리를 내면 비어오는
사랑한다는 말을
흐르며 속삭이는 물이 되고 싶어요

가을엔 바람이고 싶어요
서걱이는 풀잎의 이마를 쓰다듬다
깔깔대는 꽃웃음에 취해도 보는
연한 바람으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풀벌레이고 싶어요
별빛을 등에 업고
푸른 목청 뽑아 노래하는
숨은 풀벌레로 살고 싶어요

가을엔 감이 되고 싶어요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
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
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어요
-'가을 노래' 전문

 

아무런 설명이 필요가 없을 만큼 쉬운 시이다.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 익혀/당신의 것으로 바쳐 드리는/불을 먹은 감'이 되고 싶다는 이 예사로운 구절에는 사람의 실체가 조건없는 헌신, 전적인 헌신에 있다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깨달음이 숨어 있다. 이해인 시집의 도처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랑에의 몸바침, 종신서원, 열정, 확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사랑은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이며, '당신 아닌 누구도/치유할 수 없는/내 불치의 병'이라고까지 고백하게 한다. 그러므로 '밤새 산을 넘은 바람이/손짓을 하면/나도 잘 익은 과일로/떨어지고 싶습니다/당신 손 안에' ('가을 편지' 2)와 같은 서원의 진솔성, '너무 많이 사랑함도 죄일 수 있다면/ 죄인이게 하소서' ('밤의 기도')와 같은 차라리 통속적이기조차 한 사랑의 적나라한 표현 따위가 감동의 요인이 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황홀한 고백' 전문


 

이 시에 다른 말을 덧붙인다는 것은 공연한 군더더기일 뿐이다. 모래밭에 물이 소리 없이 스며들듯 우리의 전신에 그대로 배어드는 시적 기쁨을 허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부분의 이해인 수녀의 시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이, 정말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얼마나 놀랍고 황홀한 고백인가. 사랑은 마음을 고요하게 비워놓고 난 다음에 이는 정열 속에 있다. 증오나 질투나 분노 속에는 괴로움과 흔들림과 혼란스러움만이 깃들뿐이다.

 

완전한 사랑은 그래서 죽음과 같다. 거기에는 어떤 욕망도, 의심도, 괴로움도, 의무도, 권리도 없다. 진정한 사랑이란 온 마음과, 온 몸과. 온 심장과, 온 영혼을 다해 그에게 다가가는 것, 내게 더 이상 바칠 것이 없을 때까지 내 전존재를 그에게 바치는 것이므로 그것은 죽음과 같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우리 마음속에. 심장속에, 몸속에, 영혼속에 찾아드는 것은 고요한 평화와 분별과 사려가 깃든 정열과 이 세상 모든 고귀한 것들의 있음이 우리 마음에 일으키는 행복한 충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모두가 쓸쓸히 부서져 갈 / 한 잎의 외로운 혼' ('바다여 당신은')이다.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고독과 외로움, 생의 무의미성과 허망함에 대한 각성이 깊으면 깊을수록, 사랑은 더욱 진한 빛깔의 싱싱하고 풍요한 꽃으로 피어날 수 있게 된다. 바로 그것이 사랑이라는 식물이 뿌리를 박고 있는 비옥한 대지이므로.

 

6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
찬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6월엔 내가' 일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지고한 희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기심에 의한 소유욕과 충동적인 욕망에 굴복한 행위들이 사랑의 이름으로 횡행하는 천박하고 타락한 시대에 있어서. 자기희생에 바탕을 둔 사랑이 별처럼 고귀하게 빛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내 생애가 한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 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읍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은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여
드릴 것은 상처 뿐이어도
어둠에 숨지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옵니다
-'해바라기 연가' 전문

 

이해인 수녀는 사랑의 부재의 시대에 사랑의 부활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사랑의 사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당신과 나의 관계는, 태양과 해바라기의 관계로 묘사된다. 당신에의 그리움은 '죽을 것만 같은 열병'처럼 뜨겁고 절실한 것이며, 당신에의 사랑은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불치의 병'처럼 깊고 고통스런 것이다. 해바라기의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들은, 바로 나의 '당신께 바치는 언어'들이다. 이미 둘은 믿음과 지향과 사랑 안에서 하나로 합일된 상태이지만 나는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정말 사랑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는 것, 막막한 허기와 같은 것인가. 한 시인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경험들의 퇴적과, 그것들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추억이 되기 위한 시간의 경과와, 또 그 추억들이 철학적 사유와 명상 속에서 저마다의 무게와 빛깔을 갖기까지의 기다림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것이랴. 수도자라는 남다른 생의 길로 접어들어서도 시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영원한 사랑의 약속과 함께 시와 더불어 살겠다는 결의'를 새롭게 하며, 우리 앞에 이렇듯 맑고 투명한 시세계를 꽃피운 이해인 수녀를 알게 된 것을 우리의 행운이라고 하자.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이해인 수녀의 시집을 읽는데 이런 따위의 글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나의 말들은 부질없는 허사일 뿐이다. 독자들은 이런 글들을 건너 뛰어 직접 시집 속으로 뛰어들어 펄펄 튀는 생선처럼 살아 생동하는 감동과 만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얼마나 깊고 큰 사랑을 가져야만 거침없이 유일한 나의 삶은 사랑하는 것 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다만 경이스럽다.

 

민들레

밤낮으로 틀림없이
당신만 가리키는
노란 꽃시계

이제는 죽어서
날개를 달았어요

당신 목소리로 가득 찬 세상
어디서 떠다니며 살고 싶어서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
나도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

바람을 보면
언제나
가슴이 뛰었어요

주신 말씀
하얗게 풀어 내며
당신 아닌 모든 것
버리고 싶어

당신과 함께 죽어서
날개를 달았어요

기도

오늘은 가장 깊고 낮은 목소리로
당신을 부르게 해주소서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당신을 떠나보내야 했던
마리아의 비통한 가슴에 꽂힌
한 자루의 어둠으로 흐느끼게 하소서

배신의 죄를 슬피 울던
베드로의 절절한 통곡처럼
나도 당신 앞에
겸허한 어둠으로 엎드리게 하소서

죽음의 쓴 잔을 마셔
죽음보다 강해진 사랑의 주인이여

당신을 닮지 않고는
내가 감히 사랑한다고
뽐내지 말게 하소서

당신을 사랑했기에
더 깊이 절망했던 이들과 함께
오늘은 돌무덤에 갇힌
한 점 칙칙한 어둠이게 하소서

빛이신 당신과 함께 잠들어
당신과 함께 깨어날
한 점 눈부신 어둠이게 하소서

 

여성자신 1984.10 /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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