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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 영토'에서 꽃피워가는 '작은 위로'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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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위한 나의 기도가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게 하소서. 당신 안에 숨쉬는 나의 매일이 읽을수록 맛드는 한 편의 시가 되게 하소서. 때로는 아까운 말도 용기 있게 버려서 더욱 빛나는 한 편의 시처럼 살게 하소서'
라고 노래한 일이 있는데 이것이 저의 삶과 문학을 잘 요약한 내용이라 여겨집니다.
어렵게 이 자리에 나온 제가 자신의 문학세계를 전문적으로 조명한다기보다는 여러 문인들과 독자들이 계신 이 자리에서 차 한 잔 나누는 우정의 기쁨으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민들레의 영토》(1976)는 저 의 첫 시집 제목이고《, 작은 위로》(2002)는 현재를 기준으로 제일 나중에 나온 시집 제목이기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제목을 붙여보았지만 오늘 여기서 충분한 설명을 다못 드리더라도 양해를 바랍니다.

시는 저에게 꿈을 꾸게 만드는 하나의 놀이이고 노래였습니다.
전쟁의 페허 속에 다들 우울하고 가난했던 초등학교 시절 언니 오빠가 낭송하는 김소월·한용운 ·윤동주의 시들은 저를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눈 뜨게 해 주었습니다.

더러는 습작도 했던 중학교, 고등학교의 문예반 시절 담당 교사로부터 들은 칭찬과 격려에 힘입어 막연히 시인이 되 고싶은 꿈을 꾸기도 했지만 우선은 그냥 시를 읽고 모으고 나누는 일이 좋아 일찍부터 좋은 시들로 꾸민 문집을 만드는 취미로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였습니다. 수도생활을 먼저 시작한 언니의 영향으로 여학교를 졸업하고 수도원에 입회한 저에게 시는 하나의 기도로 다가왔습니다. 저 자신이 타고르의〈기탄잘리〉에 나오는 갈대피리가 된 것 같은 희열도 느껴보았지요. 하루도 빠짐 없이 아침 점심 저녁밤에 함께 바치는 공동기도는 모두가 구약의 시편들로 이루어졌기에 삶 자체가 하나의 시와 같으니 새삼스레 시를 다시 쓸 필요가 없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민들레의 노래’라는 혼자만의 노트를 만들어 더러 시를 써두곤 하였는데 이것이 훗날《민들레의 영토》 로 세상에 선보인 첫 시집이 되었으며 이 제목은 시인 홍윤숙 선생님이 부쳐주셨습니다. 1976년 2월 종신서원을 하며 일종의 기념시집 형태로 발간 된 이 시집은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퍽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당황 스러울 정도였으며, 이어서《내 혼에 불을 놓아》《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시간의 얼굴》등의 시집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수련받던 시절 가톨릭 잡지들에 종종 투고를
하면서 쓰기 시작한 이해인이라는 필명이 그만 저의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1980년대 네 권의 시집들이 모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면서 저는 안팎으로 예기치 않은 갈등을 겪기도 했으며 일부 평론가들의‘잘 팔리는 시인’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거나 저의 시를 하나같이 소녀 취향적인 감성의 시만으로 몰아가는 언급에 대해서는 엷은 상처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저는 시 공부도 본격적으로 안 했고 이름 있는 지면을 통해 등단한 것도 아니 며 자신의 미흡함을 익히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
릅니다. 다른 문인들에 비해 연구가 덜 된 것을 안타까워 하는 저의 독자들 중에는〈이해인 시에 나타난 기독교 신앙 양상 연구〉〈이해인의 시의식과 방법론 연구〉라는 석사학위 논문을 쓰기도 한 걸 나중에 알고 구해 보았습니다.《 시간의 얼굴》(1989) 이후에는 10년 만에야 시집《외딴 마을의 빈 집이 되고 싶다》를 낸 것도 한 동안은 왠지 시를 써서는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가까운 의무감이 저를 지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구상, 김광균 선생님은 늘 저에게 산문보다는 시를 많이 쓰라고,부디 겁내지 말고 꾸준히 쓰라고 격려해 주곤 하셨습니다.

시는 제가 이웃에게 전하는 러브레터로서의 작은 위로 이기도 합니다.
전에도 수녀회의 자료실 일을 보며 편지 쓰는 일을 겸해 오긴 했지만 199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원내에‘해인글 방’을 두고 문서선교를 할 수 있도록 수도공동체가 배려 해 준 덕분에 저는 마음 놓고 창작도 하고 번역 도 하고 많은 편지를 보내오는 독자들에게 틈틈 이 답신을 보내는 사랑의 일을 오늘까지 계속
해 오고 있습니다.‘ 수녀 님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맑고 깨끗해 진다’, ‘나를 다시 기도하고 싶 게 만든다’,‘ 읽으면 나 도 마음이 착해지고 편안해지고 어떤 시는 꼭 내가 쓴 것처럼 공감이 간다’등 끝없이 이어지는 감사의 글귀들을 읽으면서 시가 위로와 치유의 역할을 하는 숨은 힘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새롭게 절감하였습니다. 저는 수녀원 안에 있어도 날개 달린천사로 희망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는구나 여겨지는데 저의 동료들 역시‘시 덕분에 벗도 많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네!’하며 웃어줍니다.


비와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여름날, 쓰러진 상사화를 보며 눈물이 나‘작은 위로’라는 시를 썼는데 제가 일하는 해인글방의 또 다른 이름은‘작은 위로’이며 저희가 하는 이웃돕기 음악회 이름도‘작은 위로’로 정할만큼 저는 이 단어가 참 마음에 듭니다. 문학이 저에게 위로와 기쁨을 준 것처럼 제가 빚은 어떤 시들이 모르는 이웃에게까지 날아가 위로와 기쁨을 줄 수 있다니! 하며 새삼 감동하고 감탄하는 오늘의 제가 행여라도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도록 종종 스스로에게 읽어 주는 릴케의 글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가슴속에 수 백 년을 기다릴 참을성을 갖고 나의 짧은 시간을 영원한 듯이 살겠습니다. 산만함에서 정신을 집중하겠으며 성급한 응용을 버리고 내 것을 다시 불러 올 것이며 그것들을 비축하겠습니다. 사물들이 내게 말을 건네옵니다. 인간들에게서도 많은 것을 경험합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조용히, 보다 큰 정직성을 갖고 관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수 련이 모자랍니다’
릴케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구절인 이 말을 오늘도 가슴에 새기며 저도 이제는 종이에 보다는 일상의 삶 속에 시를 쓰며 존재 자체로 한 편의 시가 되고 싶습니다. 사랑 받는 그만큼 깨어 사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 더욱 겸손하고 행복한‘작은 위로’의 수녀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인·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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