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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 자리와 하늘― 이해인 수녀의 시세계
/ 구중서

  민들레의 자리와 하늘

― 이해인 수녀의 시세계 


                                                                          구  중  서



  이해인 수녀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가 1976년에 출간되었으니 2005년으로 30년이 되었다. 첫 시집의 발간 이후 이해인 수녀는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내었다. 이해인 수녀는 세속을 떠난 수도자의 몸이지만 언어가 문자로 찍혀 발간되는 과정은 어차피 사회 속의 일이다.  


  올해 10월 22일자 『동아일보』가 지난 25년 동안의 서점가 실적을 조사해 보도하였다.  한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의 기록을 보면 법정 스님이 9회, 이해인 수녀가 11회로서 최정상의 베스트셀러 저자가 이해인 수녀로 되어 있다. 이것은 단순한 상행위를 넘어서는 다른 의미로 볼 수 있다. 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는 한국에서 군부 독재가 지배한 세월이었다. 이 기간에 문학은 한편으로 치열한 저항의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본질적으로 진리의 차원을 지니는 종교적 심성의 글들이 상처받은 대중의 마음을 위로하고 영원한 가치에 향하는 희망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위로와 희망의 지향에서 그 동안 이해인 수녀의 시와 산문들이 한국 사회에 이바지한 바 있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초심(初心)을 잃지 말자”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마음이 순수했고 저력과 조짐을 잘 드러내던 그 출발점에 대해 일깨우는 말이다. 이해인 수녀의 초심은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에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초심에도 이러저러한 차이들은 있겠는데 『민들레의 영토』에는 이해인 수녀 시세계의 모습과 규모가 충실히 담겨 있음을 30년이 지난 오늘에 새삼 발견하게 된다. 시집 『민들레의 영토』에 최근 저작인 『작은 위로』와 『기쁨이 열리는 창』을 보탠 범위에서 이해인 수녀의 시세계를 살펴본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부터 나의 영토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노오란 내 가슴이

하얗게 여위기 전

그이는 오실까


당신의 맑은 눈물

내 땅에 떨어지면

바람에 날려 보낼

기쁨의 꽃씨


흐려오는

세월의 눈시울에

원색의 아픔을 씹는

내 조용한 숨소리 


보고싶은 얼굴이여 


                                           (「민들레의 영토」에서) 





  길가 좁은 영토에 피는 고독한 민들레 꽃이지만, 어여삐 보는 하느님의 맑은 눈물이 빗방울인양 떨어지면 민들레는 기쁘게 꽃씨를 날려 보내려 한다. 오시기를 기다리는 그이, “보고싶은 얼굴이여” 원색의 아픔 속에서 연인을 기다리듯 보고싶어 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사뭇 인간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다. 


  “멈추지 않는 사랑으로 / 신과 하나 되고 싶던 / 여기 초록빛 잎새 하나” (「숲에서 쓰는 편지」에서) 성직자와 수도자가 독신으로 사는 데 대해 에르네스또 까르데날이 말하였다.   남녀간의 사랑이 좋은 것을 몰라서가 아니고, 그것이 너무 좋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을 만든 하느님, 사랑의 원천 자체인 하느님, 늙지도 죽지도 않는 하느님과 아예 연애를 하기 위한 독신이다. ”



유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 기슭에 엎디어


찬 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유월엔 내가」에서) 



  

  하느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의 연속이다.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했고 하느님의 자녀이며 분신인 사람이니 하느님이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신비에만 가려져 있다기보다 바로 내 곁에 있다는 인식이 신앙을 생동케 한다. 여기에 신앙의 시적 표현이 인간적이게 되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그러면서 세속을 성직처럼, 성직을 세속처럼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사베리오 성인의 말처럼 수도자는 세속의 고향에 대한 사랑에도 소홀할 이유가 없다. 



비오는 날

유리창이 만든

한 폭의 수채화 


선연하게 피어나는 

고향의 산 마을 


                                   (「어느 수채화」에서) 




  이해인 수녀의 고향이 강원도 양구인데 거기에 연유하는 향수일지, 고향은 삶의 뿌리이자 자연이다.  자연은 거의 하느님과 같으며 자연의 상징적 거점은 산이다. 



나는 

산에서 큰다 

대답 없는 대답

침묵의 말씀


                           (「산에서 큰다」에서) 




  레오나르도 보프의 『성사(聖事)란 무엇인가』에 실린 서문은 시처럼 아름답다. “산은 마치 하느님같습니다.  모든 것을 떠받치며 온갖 것을 겪어냅니다.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품 안에 안아 들입니다.” 보프의 이 말은 이해인의 시 「산에서 큰다」와 뜻을 같이한다. 자연에는 산과 더불어 강이 있다. 





말없이 무한정

말이 깊은 강


                                   (「저녁 강가에서」에서) 





  베트남 출신으로 유럽에서 많은 이들을 이끌며 수행에 정진하는 틱 낫한 스님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도올 김용옥이 어느 신문의 부탁을 받아 낫한 스님에게 대담을 요청하였다. 낫한은 사양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함께 가는 강물입니다. 강에는 흐름만이 있고 물방울은 없습니다.” 부스러기 군말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일찍이 동양의 노자가 말하였다. 


  “최선은 물과 같이 부드러운 것이다.  강과 바다는 스스로 낮은 데를 택하니 사방 골짜기의 물들이 저절로 굴러들어와 큰 물이 된다.” (上善若水 江海善下) 이렇게 이루어지는 오하일미(五河一味) 진리의 바다는 영원하다. 




순간 속에 영원을 사는 ‘행복’이란 진주를 캐어내고 싶습니다.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에서) 



  구상 시인의 시 「오늘」은 ‘하루’가 영원 속에 이어져 있다는 신비에 대한 깨달음이다.  강의 한 유역이 오늘이라면 이것은 옹달샘과 바다에 이어져 영원을 이루고 있다고 하였다.  쉼보르카의 시 「되풀이 되는 것은 없다」는 어느 찰나의 일도 꼭 같은 모양으로 되풀이되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순간의 이 고유한 존재론적 본질이야말로 순간 속의 ‘영원’을 일깨운다. 


영원을 희구하고 영원을 눈치채는 사람은 이미 큰 소리로 외치며 주고 받은 말이 없다. 



고운 말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이지요.


                                   (「고운 말」에서) 



  신동엽의 시 「좋은 언어」가 있다. “외치지 마세요 / 때는 와요 / 그 때까진 / 좋은 언어로 이 세상을 / 채워야 해요.”  저항의 구호보다 본질적으로 이 좋은 언어, 고운 언어가 더 중요하고 심도 있다. 시와 ‘언어’에 대해서는 칼 라너의 영성신학이 논급하였다. 곤충이나 나비의 등에 핀을 꽂아 채집함에 나열한 것같은 사전 속의 언어가 아니고, 의미를 해방하는 언어가 있다. 세례성사에 쓰이는 물의 의미는 과학자가 말하는 H2O와 다르다. 처음에 말씀이 있었다고 성서는 말한다.  “존재근원으로부터 오는 살아있는 원초적 언어로 시를 써야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언어를 다루는 시인은 사제와 같은 신분의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시인은 수도자라 할 수도 있다. 


영원을 살고, 살아있는 언어로 수도를 하는 이에게는 삶이 오히려 단순해진다.




아름다움의 시작은 단순함임을 


예수님께 다시 배우는


오늘의 기쁨이여 


                                   (「단순하게 사는 법」에서) 



  그리스도의 산상수훈,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은 단순함의 경지이다.  노자의 원목, 나무등걸(樸)이 진리(道)와 같다고 한 말도 같은 뜻이다. 


  그러나 수도자도 시인도 약하고 한계가 있는 ‘인간’이다.  때때로 외롭고 상처받고 절망한다.  그러다가 다시 회개하고 겸허에 돌아가게 된다. 





  볼품없이 잊혀진 나를 억울해하면서 슬프디 슬픈 체념을 눈 아프게 울었습니다.


  …… 내가 만든 자아의 성벽은 와르르 무너지고 느닷없이 솟구치는 새로운 물줄기, 이 기쁨 ……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에서) 



  일찍이 공자도 이 대목을 지적하였다.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데에 대해 섭섭해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큰 사람이 아니랴.”(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가톨릭 교회는 1965년에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아닌 종교들에 대하여」라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유교․불교․힌두교․이슬람교 등 다른 모든 종교들 안에 있는 옳고 성스러운 것들을 존중한다.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보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화해했으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 대화해야 한다” 하였다. 


  회칙 「신앙과 이성」(1998)에서는 노자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도 모두 진리에 향하는 같은 길을 가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이성적 논리에 의거하는 철학도 계시 신앙의 복음에서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한 데에 모여 와 만나게 된다. 


  이해인 수녀는 산문 「웃으며 즐기는 세계 종교 이야기」(『기쁨이 열리는 창』)에서 이 세계적인 평화와 일치에 지향하는 마음을 펼쳐 보였다. 실로 모든 사람이 다 하느님의 자녀이며, 마음이 착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하느님만이 아시는 속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완성을 향해 

아픔의 씨앗 품고

우주를 색칠하던 꽃

다함없는 믿음과

‘사랑의 학문’ 밖엔

가진 게 없던

우리가 닮고 싶은 

고운 님이여 


                                   (「소화(小花) 데레사 성녀에게」에서) 



  이해인 수녀의 위 시에서처럼 소중한 것은 ‘완성’이다. 인간본성과 자연법적 질서의 ‘자기완성’(自己完成)이다.  자유와 책임에 바탕을 둔 도덕적인 힘에 의한 인간의 자기완성,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지향하는 ‘완성사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이렇게 넓은 생각의 규모 안에서 다양하고 섬세한 감수성의 언어로 위로와 희망의 시를 쓰는 한 길에 벌써 30년을 걸어온 이해인 수녀는 계속 젊은 모습이다. 


                                                

(글 구중서․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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