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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론
문학한글9 (1995) / 조용란
이해인 시인은 특이한 시인이다. 이해인 시인은 우리 나라 문학사 가운데서 찾아 보기 어려운 수도자(수녀) 신분을 가진 시인인 것이다.
 

이런 신분의 시인이기 때문에 우리 문단에서는 마땅히 있어야 할 논의나 평가가 거의 없었다. 글쓴이는 이해인 시인에 대하여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는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특이한 신분이 관심을 끈 원인도 되었지만, 주로 그 분의 가을 이슬 같은 정갈한 언어가 돋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 때문이었을까. 이해인 시인은 굉장한 수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시를 읽는 사람이 적은 독서 풍토에서 살필 때 이는 분명 미덕이 될 것이다.

 

이해인 시인은 현역 시인이지만 '두레박', '꽃삽' 등의 산문집과 '엄마와 분꽃'같은 동시집도 발간한 바 있다. 글쓴이는 이 방면을 꿰뚫어 볼 힘이 없어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이런 부족한 면은 앞으로 더 연구하는 수 밖에 없겠다. 이해인 시인이 수녀이기 때문에 이 분의 가계나 생장사에 대하여 언급한 분이 별로 없었다. 결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글쓴이는 이해인 시인에게 직접 전화를 하여 이런 면에 대하여 알아 보았는데, 이런 점은 앞으로 있을 연구가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이분이 현역 시인이기 때문에 총체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하겠다. 역시 뒷날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글쓴이는 얼마 전 어떤 동인지에 이해인 시인에 대한 간단한 글을 초한 일이 있었다. 잘 정리되지 않은 서툰 글이었다. 인쇄가 잘못되어 오자와 탈자가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글쓴이가 논리를 전개시킴에 있어서 불합리한 점이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특히 최근에 이해인 시인은 '꽃삽'-샘터,1994 이라는 산문집을 간행한 바 있는데, 이 책에는 이제까지 글쓴이가 이해인 시인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던 점들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 데가 많았다. 특히 이 책은 이해인 시인의 가계를 아는데에는 결정적인 증거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글을 쓰고 싶었지만, 모든 주변 여건이 뜻과 같지 않아 우선 앞에서 발표한 글을 크게 수정, 보완 하여 발표하게 되었다. 이 글도 서론적인 성격의 글이 되겠는데, 앞으로 이해인 시인에 대하여서는 좀 더 자료가 모아지는 대로 새로운 글을 쓰고자 한다.

 

이해인 시인은 천주교의 수도자다. 다시 말하면, 수녀이다. 신분부터가 특이하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나는 우리 나라에서 수녀로서 시를 써 왔던 분을 알고 있지 못하다. 혹 이전에 수녀 시인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해인 수녀처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고, 그래서 유명해진 분이 있었던가, 그런 수녀 시인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이해인 수녀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시인으로서의 이해인을 논한 글이나 이해인의 시를 착실하게 찾아 읽고 그것을 정밀하게 논한 논문은 많지가 않다. 단편적인 서평 정도의 글이나 시집의 서문이나 발문에 붙어 있는 의례적인 찬사 중심의 글이 대부분이다. 그간 판매된 시집 (어떤 시집은 200여 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에 비해 볼 때 너무 적막하지 않은가.

 

글쓴이가 생각할 때 여기에는 몇가지 원인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원인을 몇 가지로 항목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는 천주교의 수도자다. 남자 수도자를 수사라 하고, 여자 수도자를 수녀라 하는데 그는 수녀다. 세속의 틀에 매여 사는 일반 시인들에 비하여 세속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거나 알려서는 안 될 점들이 많으리라. 그의 호적 이름이 이명숙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는 이가 많지 않으리라고 판단된다. 이런 형편이니 다른 사항이야 말해 무얼할까.

 

둘째, 특정종교를 배경으로 하는 종교시가 많지 않은 우리 나라 시문학의 전통이 이해인 시인의 시에 대한 논의를 제약하였다. 특정 종교의 교리나 그 종교가 지향하는 세계관에 통달한다는 것은 상당한 연구와 시간이 소요되는 과제인다. 이는 문학을 전공하는 이에게는 상당한 무게의 부담이다. 이런 부담을 짊어지고 그 세계관을 언어로 승화시켜 놓고 변형시켜 놓은 시를 분석하고 탐색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해인 시인은 가톨릭을 신앙하는 평범한 한 사람의 신자가 아니다. 남성이 아니기에 가톨릭의 성직자가 될 수 없었겠지만, 그는 수도자로서 평생을 정결하게 살며, 청빈하게 살며, 순명하여 살기를 서약한 사람이다. 이런 서약을 한 수도자가 쓴 시를 종교에 대한 교양을 갖추고 있지 못한 사람이 감히 시비를 하기란 어려웠으리라. 여기에 이해인 시인의 시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적었던 원인이 숨어 있었다고 보겠다.

 

셋째, 이해인 시인이 문단과는 거의 연결이 없는 곳에 위치한 분이라는 점을 들겠다. 사회의 어느 영역에 있어서나 직업의 공통성이나 관심의 공통점을 따라 특성 있는 무리를 이룬다. 문단도 그런 무리들의 모임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문인들을 중심으로 해서 문예지가 나오고 이 문예지를 중심으로 하여 문단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해인 시인은 이런 문예지나 문단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고 또 그런 곳에서 작품을 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백만부가 읽힌 시집들을 낸 시인(<책을내면서>[4] 5쪽)임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인연으로 친분이 있는 홍윤숙, 구상, 박두진, 이어령 등을 제외하고는 문단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해인 시인의 시를 한번쯤 점검해 볼 때가 되었다는 것이 글쓴이의 생각이다. 아무리 문단 밖에 있고, 문인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수도자의 시라 하더라도 그 시가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고, 또 그 영향이 적지 않다면 그 시인과 시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도 전혀 의미가 없는 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해인 시인은 주(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며 흠숭하는 수도자임은 위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런 수도자이기에 이분의 생활의 중심은 항상 그분에 대한 기도와 묵상과 찬양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해인 시인의 시집이나 산문집([5]와 [7])을 꼼꼼히 읽어 보면 기도하거나 묵상하는 일에 못지 않게 시를 사랑하여 시를 창작하고 시를 읽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해인 시인의 시에 대한 이런 사랑은 어렸을 적부터 각별하였던 듯하다.

 

어려서부터 절로 말을 배워 익히고 주위의 것들과 친숙해 오듯 나는 나도 모르게 시와 함께 호흡하는 매일을 살아왔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슬플 때나 시라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늘 행복했습니다. - (<후기> [1] 133쪽)

나는 시를 쓴다는 게 얼마만한 아픔과 인내를 수반하는 것인지 새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그것은 또 하나의 수도의 길, 바로 나 자신이 되어 가는 길이라는 것을 누가 뭐래도 시는 나에게 있어 생생한 기도의 체험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거짓이 아님이 확신합니다. - (<후기> [1] 134쪽)

나는 어린 시절부터 늘 시를 가까이 했지만 시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일부러 지어먹은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남이 써 놓은 시를 읽는 기쁨이 컸고, 간혹 혼자서 습작해 보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 (<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멍에들> [5] 234쪽)

 

위의 인용문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이해인 시인은 시와 함께 호흡하는 매일을 살아왔고, 시를 쓴다는 것은 "수도의 길, 바로 나 자신이 되어 가는 길"이라는 체험을 하였고, "남이 써 놓은 시를 읽는 기쁨"을 체험하였던 것이다. 그는 수도자이면서 이렇게 시를 읽기를 좋아하였고 또 그걸 짓기를 즐겼다. 이런, 시를 읽고 시를 쓰는 일을 그는 수도자의 기도로 생각한다. "수도자는 모두 다 시인이라는 생각을 자주하기 때문일까요? 하루에 네 번은 꼭 구약의 <시편>으로 기도를 바치는 삶 자체가 너무도 시적인 것 같습니다."([5] 234쪽) 그러니까 이해인 시인은 기도하는 자세로 시를 쓰고 구약 성서의 <시편>을 읽는 심정으로 남의 시를 읽는다.

 

이런 자세와 시를 쓰고 읽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의 말처럼 이해인 시인의 시는 어렵지가 않아 좋다는 이도 있고 사상과 문제 의식이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남이 무어라고 하든 그는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는 말한다. "한가지 내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마디의 단어도 거짓말은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5] 235쪽) 그의 이런 정신도 실은 창조주께 좀더 가까이 가고자 하는 염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해인 시인의 시에서 이런 염원을 떼어내 버린다면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다소 중복되는 느낌이지만 이해인 시인의 전기적 사실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글쓴이가 이해인 시인을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눈 일은 없지만, 서신 왕래는 가끔 있었던 터이다. 때문에 전화로 직접 물어 본 일도 있었으나 이해인 시인이 수도자인 까닭에 질문 자체가 수도자에 대한 결례가 되지 않을까 몹시 조심스러웠다. 이해인 시인의 간략한 전기적 사실을 아래에 적어 보고자 한다.

 

이해인 시인의 본명(호적상 이름)은 이명숙이다. 이는 이미 위에서 글쓴이가 밝힌 바 있다. 1945년생으로 해방둥이이다. 오래살지는 않았다지만 강원도 양구가 고향,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양구는 휴전선 바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양구군 내에는 6.25때에 격전이 벌어졌던 유명한 고지들이 많이 있다. 산수가 아름다운 곳이기도 하다. 양구군이 지금은 대부분 휴전선 남쪽에 있으나 위도상으로 보면 38선 북쪽이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가 없으나, 이해인 시인의 부친은 6.25가 나던 1950년 9월에 이해인 시인의 숙부댁에 갔다 오는 길에 납북되었다. 잠시 서울 청파동과 인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일이 있고, 서울 원남동에서 살면서 창경 국민학교를 다녔다. 풍문 여중을 다니다가 동래여중으로 전학하였으며, 고등학교는 김천 성의 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68년 5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1976년 2월 2일에 종신서원을 하였다. 물론 현재도 수녀님으로서 수도회의 많은 일을 맡아 보고 있다. 1975년 필리핀의 세인트 루이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은데, 졸업논문은 고독한 미국의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와 김소월의 시를 비교 연구한 <에밀리 디킨슨과 김소월의 자연시 비교 연구> 였다. 추측컨대 수련 수녀로 있는 동안에 가톨릭 신자가 많은 필리핀에서 봉사와 전교 활동을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에는 수도 생활과 시작에 전념하다가 서강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고, <시경에 나타난 복 사상 연구>로 1984년에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해인 시인이 어떤 동기에서 가톨릭의 신자가 되고 수도자가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다만 대대로 내려온 오랜 신자의 집안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하겠다. 두 분 고모 가운데 한 분이 젊어서 수녀원에 들어가려 했었던 일이나 20대의 어머니가 영세를 받았을 정도라면 오래 전부터 신앙 생활을 해 온 집안임을 알 수 있겠다. 4남매 가운데 큰 딸이 가르멜 수녀원의 수녀인데, 제일 큰 딸을 수녀로 보낼 정도의 가정이라면 가족 성원의 신심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해인 시인이 수녀가 된 데에는 큰 언니의 영향도 적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된다. 1남 3녀 가운데, 제일 위의 언니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수녀님이고 (이해인 수녀가 국민학교 다닐 때 수녀원 입회), 둘째는 서울 예술 전문대학 광고창작과 교수인 이인구 님이고, 셋째가 이해인 시인이며, 넷째는 여동생으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이해인 시인은 현재 수녀원 총원장 수녀님의 비서로 일하고 있다.

 

이상이 글쓴이가 알고 있는 이 해인 시인의 전기적 사실의 전부이다. 보는 바와 같이 대단히 미흡하다. 앞으로 더 보충할 수 밖에는 없다. 이해인 시인은 어렸을 적부터 책 읽고 글 쓰기를 몹시 좋아하였던 것 같다. 아래의 시를 보자.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상 앞에 앉아
내내 동화책만 읽는 나에게 엄마는
"제발 좀 밖에 나가서
뛰어 놀다 들어오면 안 되니?"
책가방 내던지자마자
밖에 나가 뛰어 노는 내 동생에게
"제발 들어가서
책 좀 읽다 나오면 안 되니?"

- 엄마는 우리에게 -

 

이 동시는 이해인 시인이 어렸을 적부터 책(동화) 읽기를 몹시 좋아하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 어렸을 적부터 늘'책벌레'란 별명이 붙어 다녔다고 하는데(<책읽는 기쁨1>[8] 164쪽) 공부하는 것, 특히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있어서 몸에 밴 습관이 몹시 중요함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어린 시절부터 시 쓰기를 좋아하였음을 토로한 본인 스스로의 말을 좀 더 들어 보기로 하자.

 

"내가 열심히 써 간 '봄'이란 동시를 '누가 써 준 것임에 틀림없지?' 라고 호통치시던 5학년 때의 담임선생님,'달밤의 소녀'란 서투른 시를 문학의 밤에서 읽기도 했던 중학생 시절, 많은 격려를 해 주셨던 임영무 선생님, 그리고 내일의 규수 시인이라며, '산맥'이란 시를 축하해 주시던 여고 시절의 홍 성문 선생님.모두가 잊을 수 없는 분들이십니다." - (<이 아프고도 아름다운 멍에를> [5] 234쪽)

 

어렸을 적에 동화 읽기를 좋아했고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 때는 여러 선생님으로부터 문재를 인정 받았고 더러는 백일장에 나아가 입선을 하기도 하였던 이해인 시인은 기성 문인인 평론가 원형갑의 인정도 받을 정도였던 것이다. 오빠 이인구님의 증언([3] 142쪽)에 의하면 이해인 시인은 여고 1학년때 이미 수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이 때 수도자의 길과 시인의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을까를 걱정하였지만 결국은 이 두 길을 거의 완벽하게 걷고 있으니 어린 여고시절의 뜻을 이루었다고 할 만하다. 이해인 시인 본인을 위해서도 젊었을 적에 품었던 꿈을 이루었으니 퍽 다행이라 할 수 있겠고, 우리 나라의 문학사로 보았을 때도 종교 시인이라는 특이한 존재를 첨가할 수 있게 되었으니 큰 보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후 동시 <아침>, <하늘>, <나의 꿈 속엔> 등으로 1970년 <소년>의 추천을 받아 문단에 등단하였다. 현재까지 꾸준히 시와 시집과 동시집을 펴내고 있으며 '새싹 문학상'과 '여성동아 대상'을 수상하였다.


여기서 글쓴이는 이해인 시인이 여고 시절에 쓴 시라고 밝혀 놓은 <산맥>([5] 234쪽)이라는 작품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이 작품은 <민들레의 영토>에 실려 있는데 물론 시집에 수록하면서 글쓴이가 수정하거나 가필을 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해인 시인의 문재를 알기 위해서는 일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득한 하늘 너머
천년 그리움 님의 얼굴이 있어
천년을 묵묵히 기다려야 하는가.

파랗게 이끼 먹도록
태양을 외면한 채
매양 너를 키워 온
검은 바위 바위를 안고

.........

지나온 날들을 생각지 않겠다.
모질게 아려오는 슬픔의 노랠랑
아예 부르지 않겠다.

.........

아.. 마음 아픈 어젯날은 잊자
찬란한 내일만을 믿자.

 

이 시의 끝에 1963년이란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해인 시인이 열 아홉 살 때 쓴 것으로 추측된다. 열 아홉 살이라면 아직도 인간이나 세계를 보고 해석하는 눈이 미숙할 수 밖에 없는 나이인데 시인의 어떤 무거운 아픔이나 그리움을 이겨내는 의지를 산의 침묵과 으젓한 모습에서 구하고 그 산처럼 조용히 인내하겠다는 태도는 놀랍다. 시인은 여기서 그저 벙어리처럼 인내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내하는 데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요동치지 않고 가볍게 처신하지 않는 데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 "모질게 아려오는 슬픔의 노랠랑 아예 부르지 않겠다."라는 표현이나 "마음 아픈 어젯날은 잊자"는 살아오면서 겪은 아픔을 반추만 할 것이 아니라 희망으로 승천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그런데 그 희망이란 무엇인가. 천년 그리운 님의 얼굴 아닌가. 이해인 시인의 님은 그 뒤 주님으로 구체화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하여튼, 사물의 뒤에 숨은 이미지를 구상화 하거나 의인법과 은유법을 적절히 구사하고 있는 걸 보면 어렸을 적부터 시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이제까지 이해인 시인은 네 권의 시집과 한권의 동시집, 그리고 두 권의 글 모음집과 한권의 기도시 모음집을 출판하였다. 그러니까 모두 여덟 권의 저서를 선보인 셈이다. 이 여덟 권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주제를 찾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수도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그의 시를 엮어 가고 있는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이면서 수도자인 그가 커다란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주를 흠숭하고, 우러르고, 찬양하는 시를 써 왔지만, 그 자잘한 심상의 파편에는 몇 가닥의 이미지의 이채로움이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시가 이 강물, 저 냇물의 모임이 큰 강을 이루듯, 절대자의 가르침을 되새기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들어 실천하는 세계에로 귀일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으나 그 전체의 내면에는 다소 이질적인 빛깔이 눈에 띈다는 말이다. 다소 이질적인 이 가닥을 셋으로 나누어 약간의 설명을 보태고자 한다.

 

(1) 주를 흠숭하고 찬양하며 우러러 봄

 

몇번이나 되풀이하여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해인 시인은 수녀로서 수도자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가 창조주나 그리스도를 핵심으로 하여 우러나올 수 밖에 없다. 만일 평범한 일상적인 삶이나 수녀원에서의 생활, 그리고 기도 가운데서 그가 창조주나 그리스도를 생각지 않는다면, 그는 수도자가 아니거나 수도자라 하더라도 수도의 길에 참으로 정진하는 수도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식 깊이 박혀 있는 대상이나 사상은 어떤 형태로든 언어를 통하여 표출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라고 할 때, 이해인 시인의 시가 창조주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펼쳐질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 실로
당신의 비단 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 해바라기 연가 -

나에게서 당신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가난뱅이 여인

나에게 당신을 옷 입히면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궁전의 여인

하느님
아무래도 당신은
기적의 신입니다.

- 하느님 당신을 -

 

이해인 시인은 여느 여인과 마찬가지로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 실로" 임의 비단 옷을 짜고 싶고,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안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가 있는데, 이 꽃씨가 바로 임에게 바치는 시(언어)가 된다고 말한다. 이 시인으로부터 '당신'을 빼고 나면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 없는 "가난뱅이 여인"이 되지만 반대로 임의 옷을 입고 보면 "아무것도 부러울 게 없는 궁전의 여인"이 된다. '임'은 이해인 시인에게는 이처럼 절대적인 존재다. 임이 없는 이해인 시인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허깨비일 뿐이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금 곧 이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도 이것이 가장 진실한 저의 기도임을 다시 알게 해 주셨습니다."라는 말도 이해인 시인의 이런 심정을 고백한 것이라 할 만하다.(<사랑의 빵을 먹으며>[8] 144쪽) 이런 거대한 존재 앞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미미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미미하고 하잘 것 없고 불완전하다. 임이 크게 보일수록 그 임을 우러르는 나는 그만큼 어리석고 못나고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

 

우리네 가슴에 쾅쾅 못질을 하는
폭력, 전쟁, 살인, 미움, 원망, 불신이여 물러가라.
삶의 흰 빛을 더럽히는
분노, 질투, 탐욕, 교만, 허양, 이기심이여 사라져라.

- 새해엔 산 같은 마음으로 -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내고 싶거나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싹틀 때
여럿이 모여 남을 험담하는 자리에서
선뜻 화제를 돌릴 용기가 부족할 때
나직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마음을 깨끗이 하렵니다.

- 다시 드리는 기도 -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부도덕과 패덕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아니 그런 짓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결심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기의 조그마한 이익을 위하여, 하찮은 명예를 위하여 "가슴에 쾅쾅 못질"을 해대는 경우가 많다. 이런 폭력과 전쟁이 새해에는 없어지기를 바람이 어찌 이해인 시인에게만 있을 것인가. 여럿이 모이면, 그 모임에 없는 어떤 사람을 골라 집단적인 린치(?)를 가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좌석에 끼어 있는 경우, 이래서는 안되겠는데 하면서도 그 분위기에 눌려 자기도 남처럼 험담을 하거나 침묵으로 그 험담에 가담하는 때가 많다. 따지고 보면 우리 주변에서 일상으로 겪는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인 시인은 이런 때에 나직이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 매달려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우러름'과 '낮춤'은 마치 시소(seesaw)와 같다. 우러름의 정도가 높고 강할 수록 나는 '낮춤'의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해인 시인의 인성이나 수도자로서의 품성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2) 흐르는 시간 안에서 죽음을 명상함

 

인간이란 어차피 떠나야 할 존재다. 언젠가는 가뭇없이 사라져야 하는 그런 덧없는 존재란 이야기다. 무궁한 시간 위에서 잠시 노닐다가 사라져 버리는 허망한 존재가 인간인데, 이런 허망한 인간 존재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치 몇 백 년이나 살 것처럼 상대에게 상처를 내고 내가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러나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런 행태들은 얼마나 가소롭고 천박한 일이냐. 이해인 시인은 "이승의 큰 가지 끝에서 내가 한 장 낙엽으로 떨어져 누울 날은 언제일까 헤아려 보며 나의 물건이며 대인 관계 등 아직 정리되지 못한 부분들을 성찰해 본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낙엽은 나에게>[8] 88쪽) 이해인 시인은 시간이 덧없이 흐름을 누구보다도 투철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시간을 아끼려고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도 역시 잘 아는 사람이다. 따라서 늘 죽음을 예비하면서 산다.

 

별 뜨고
구름가면
세월도 가네.

오늘은 어제보다
죽음이
한 치 더 가까와도

평화로이
별을 보며
웃어주는 마음.

- 별을 보면 -

하얀 민들레 솜털처럼
먼지가 정다운 것은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때문이지.

어느 날
나도 한 줌
가벼운 먼지로 남게 됨을
헤아려 볼 수 있기 때문이지.

- 먼지가 정다운 것은

 

여러 시 가운데서 위의 시는 그 짜임새에 있어서 별로 뛰어난 시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여하튼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하루 하루를 산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에 가까이 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더럽고 탁한 공기를 뒤집어 쓰고 살면서 때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데 그것 자체가 바로 삶의 징표가 아니던가. 그렇기 때문에 때 묻은 '먼지'가 정답기도 하다. 살아 있기에 만남도 있고 헤어짐도 있으며 시샘과 증오도 있다는 말이다. 죽음은 바로 적막이 아니던가.

 

그러나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게 죽음이다. 따라서 인간은 죽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데 보통 사람들은 이를 잊고 산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삶' 속에 죽음이 있는 게 아닐까. 삶의 먼지 속에 죽음이 있는 게 아닐까. 이해인 시인은 '먼지'에서 삶을 보았고, '먼지'에서 삶을 보앗고, '먼지'에서 죽음을 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죽음 저쪽에 현실적인 삶(이승)과는 완연히 다른 세계가 있다. 이해인 시인은 그 세계가 존재함을 확신하고 있다. "여행길에 오르면 내가 아직 살아 있는 기쁨을 수없이 감사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슬픔을 또한 감사한다." (<길을 떠날 때>[2] 132쪽)는 말도 이해인 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명상의 일단을 보여 준다.

 

(3) 조국의 산하를 사랑하고 통일을 갈망함

 

이해인 시인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미세한 것들을 소재로 하여 시를 써 왔다. 그러나 이해인 시인에게도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그런 한과 슬픔이 있다. 우리 나라의 역사가 안겨준 고통이 그것이다. "언제나 한과 눈물이 서린 듯한, 그러나 나를 낳아 준 모국의 산천, 하루도 근심이 끊이지 않는 그녀의 쓸쓸한 이마를 보면 눈물이 핑 돕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인해 살아서도 이미 죽음의 순간을 맛보는 나의 이웃들을 지금은 그 아무도 위로해 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왜 그토록 힘이 없어 보입니까."(<가을편지18>[4] 18쪽) 이 짤막한 글은 시가 아니다. 산문일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 의인법을 써서 우리의 모국 산천을 힘없는 여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
남북으로 갈라져서
아직도 한가족이 되지 못한
상처투성이의 우리 나라도
하루 속히 평화 안에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전구하여 주소서.

- 어머니, 당신의 오월이 오면 -

 

이 시는 성모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인데, 아직도 남북으로 나뉘서 그리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우리 나라 사람의 한을 말하고, 성모님께서 기도자(이해인 시인)의 기도를 듣고서 창조주께 간절하게 전해 줄것을 기원하고 있다. 이해인 시인이 비교적 최근에 와서 이런 문제에 대하여 조금씩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납북된 아버지를 둔 그로서는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점증하고 있는 통일 논의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 나라에 계세요?
땅 위에 계세요?
가족과 헤어진 후
한 번도 소식을 들을 수 없던
보고 싶은 아버지
아버지의 모습이
오늘은 백두산으로 솟느다.

...........

나는 서둘러
산을 내려온다.
묻어 둔 그리움이
화산으로 폭발할 것 같아
나는 울지도 못하고
산을 내려온다.

- 백두산에서

 

1992년 6월 중국을 통하여 백두산으로 갔으리라. 백두산 천지 가에서, 자신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던 아버지를 40년 만에 큰 소리를 내어 불러 본다. 아버지는 이해인 시인이 여섯 살 때 이북으로 끌려 가셨다. 지금은 살아계실까, 돌아가셨을까. "묻어 두었던 그리움이 화산으로 폭발할 것 같아 울지도 못하고 산을 내려온다." 묻어 둔 그리움은 한이 된다. 건드리면 그 한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수 있다. 이해인 시인의 시 가운데 "묻어둔 그리움이 화산으로 폭발할 것 같아"와 같은 강렬한 정서를 나타낸 곳은 이곳 말고는 별로 없다.

 

세월이 가면 자꾸 가면
할 수 없이
사람은 늙는다지만

우리 엄마 얼굴은
언제나 젊어 있고

북녘 멀리
떠나신 아빠도
이내 돌아오시고

나는 참 기뻐서
웃기만 한다.

- 나의 꿈 속엔 -

 

이해인 시인의 아버지는 꿈 속에서만 집으로 돌아온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꿈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꿈 속에서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것은 삶의 현장에서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언젠가는 모든 이와
손잡고 일어설
꿈과 희망을
굽이치는 물살도
노래하는 강

사랑하면서도
헤어져 사는 이들의
깊어 가는 한숨을
귀담아 듣다
자꾸만 목이 메는 강.

- 두만강에서

 

국경을 흐르는 두만강은 "모든 이와 손잡고 일어설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강"이면서 "헤어져 사는 이들의 깊어 가는 한숨을 귀담아 듣다 자꾸 목이 메는 강"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해인 시인에게 우리 국민의 분단의 아픔과 통일에 대한 갈망이 큰 비중을 가지고 육박해 오지 않을까 추측된다. 왜 그러한가? 이해인 시인이 바로 이산 가족의 한사람인데, 세월이 흐를수록 잃어버린 혈육에 대한 사모의 정은 더 또렷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의 시는 그 편수에 있어서는 그렇게 많지 않으나 이해인 시인의 깊은 내면에 슬픔의 응어리가 되어 묻혀 있는 처절한 한을 드러내고 있어서 주목된다.

 

글쓴이는 위에서 이해인 시인의 시의 주제를 셋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물론 이런 분류는 자의 적인 것이다. 셋으로 분류해 보았다고는 하지만,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창조주에 대한 공경과 기도"라는 말속에 모두 수렴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수도자(수녀)임을 기억하면 왜 그의 시가 그런 쪽으로 수렴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글쓴이는 이 글을 쓰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이해인 시인은 수녀님 신분이기 때문에 학력이나 경력을 자세히 알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보충해야 될 점이 참으로 많다. 또 하나 미진하다고 느껴지는 점은 글쓴이가 천주교의 교리나 성서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여 이해인 시인의 시를 심도 있게 침착하지 못한 점이다. 이런 점도 역시 장래를 기약할 수 밖에 없겠다. 끝으로, 참신한 시어의 개발과 그것의 적절한 구사, 그리고 알맞은 수사법의 활용 등은 이해인 시인의 시가 가지고 있는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종교시'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느끼는 때가 올 수 있는데 - 이런 때가 의외로 빨리 올 수 있다 -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우리는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해인 시인은 이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시인은 끊임없는 의식의 전환을 기해야 하고 신분은 여전히 수도자로 머물러야 하기에 시 창작에 있어서의 고심은 여간 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 분문 가운데 [] 안에 든 숫자는 각각 '='표 오른 쪽의 책을 가리킴.
[1] = 민들레의 영토(1976년)
[2] = 내혼에 불을 놓아(1979년)
[3] =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83년)
[4] = 시간의 얼굴(1989년)
[5] = 두레박(1986년)
[6] = 엄마와 분꽃(1992년)
[7] = 사계절의 기도(1993년)
[8] = 꽃삽(1994년)

문학한글9 (1995) / 조용란 (인하공업전문대 교수,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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