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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흰구름 편지 - 비에 젖은 단상
  작성일 : 2006-09-05
 

비에 젖은 단상


                                                                                                        글 이해인 그림 김점선

 


 

 요란한 빗소리에 잠이 깨었다. 빗소리를 고운 음악으로 듣기보단 원망이 앞선 여름이었지! 가뭄 속에 애타게 기다리다 알맞게 내려주는 비는 구원이지만 비도 너무 많이 오니 슬픔이 되네. 제발 그만! 외치며 하늘을 보는 마음. 비 피해로 집과 가족을 잃은 이들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해외여행을 나갔다가 볼일만 보고 관광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와 그 비용을 이웃돕기에 냈다는 어느 친구의 행동이 감동을 준다. 희생당한 이웃의 모습을 신문에서 보는 순간, 사소한 일들로 부모에게 불평하던 마음이 부끄러웠다는 어린 독자의 편지도 아름답고 따뜻하다. 이런 마음들이 더 많이 모여 살기 좋은 우리 마을, 우리나라가 되기를 꿈꾸어본다.


* 한여름의 더위도 힘들지만 습기도 견디기가 힘이 드네. 그러나 날씨에 대한 습관적인 불평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좋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나의 침대에 새 이불 하나가 얹혀 있다. 물론 개인 것은 아니고 공동용이지만 수녀원 와서 처음으로 분홍 꽃무늬의 고운 이불을 덮게 생겼네. 뽀송뽀송한 꽃이불 덮고 자며 꽃마음을 키워야지.

                                    

* 사랑이 있어야 잘 보이고 사랑이 있어야 잘 들리고 사랑이 있어야 잘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새롭게 기도한다. ‘오늘 하루도 제가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노력이 참기도임을 알게 해주시어 정성을 다해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 오늘 만난 사진작가께서 나에게 인생에 중요한 것이 무어냐고 묻는 말에 나는 서슴없이 ‘지혜!'라고 대답하였다. 만남에도 사랑에도 일상을 꾸려가는 일에도 무분별과는 거리를 둔 진정한 의미의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하곤 한다. 때로 착하다는 것 하나만 내세우며 자신의 잘못조차 합리화시키는 것은 참으로 슬기롭지 못하며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라고 본다. ‘정녕 지혜는 절제와 예지를, 정의와 용기를 가르쳐준다. 사람이 사는 데에 지혜보다 유익한 것은 없다' 오늘은 지혜서를 다시 읽으며 지혜를 불러본다.

* 선에 대한 지나친 집착…자기 나름대로 정해 놓은 완벽함과 거룩함…도 때로는 남에게 커다란 짐이 되고 부담이 되는 거북함! 그래서 남보다 ‘훌륭하다’고 평가 받는 이들이 오히려 더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있나 보다. 좀 모자라고 부족한 듯해도 남을 편안하고 자유롭게 해주는 수수한 덕성이 그리워진다. 수도생활을 오래 할수록 왜 어리석음의 여백이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 언어가 갖는 전염성! 누군가 내게 와서 살기 싫다는 말을 하며 부정적인 푸념을 하면 나도 하루 종일 우울하고, 의욕에 넘치는 태도로 희망과 긍정의 말을 하면 나도 하루 종일 밝고 명랑하게 지낼 수 있다. 다른 이의 말들에 영향을 받지 않고 살기가 참 어렵네.

 

 

 

 


* 아베 하지메라는 작가의 그림동화 <호두>를 읽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할머니와 손자의 사랑이 호두나무를 사이에 두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호두가 좋아진다.


* 구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오래된 시골마을을 다녀왔다. 모르는 길을 물을 때마다 정성껏 가르쳐주던 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얼굴들이 집에 와서도 자꾸만 생각이 나네. 동행하였던 이들의 웃음소리도…. “이 동네는 내가 어디선가 늘 보아오던 동네 같네! 너무 좋다!” 소녀처럼 감탄하며 즐거워하시는 어머니. 오늘 아침엔 느닷없이 나에게 물으셨다. “우리가 청파동에 살 적에 뒷집에 살던 유명이란 아이 생각나? 수녀가 대여섯 살 적에 맨날 놀자고 불러내던 그 귀염성 있는 아이 말이야. 우리 집엔 꽃이 많아 부자라며 부러워하던 그 아이가 갑자기 보고 싶네! 한 번 찾아보지 그래?” 나는 찾을 방도가 없다고 말씀드리니 실망하시는 표정이 역력하다. 세월이 가면 사람은 아주 오래된 추억부터 더욱 선명하게 살아오나 보다.


* 비오는 날 듣는 새소리는 왜 이리 애절할까? 젖은 날개를 잘 펴지도 못하고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잠시 쉬어 갈 집을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 “너 지금 어디 있니?” 하고 내가 물으면 “너는 누구니? 너의 집은 어디니?” 나에게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예비수녀들이 아침부터 아베 마리아 합창을 연습하고 있다. 그들의 청아한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오늘, 나도 삶의 숲에서 열심히 노래하는 작은 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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