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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흰구름 편지 - 동시를 읽는 기쁨
  작성일 : 2006-06-12

동시를 읽는 기쁨

글 이해인




“마음이 슬프거나 우울할 때는 어떻게 하세요?” 종종 이런 질문을 받을 적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기도가 우선이긴 하지만 수도자의 신분이라는 것 때문에 그냥 “기도로 해결하죠”  하는 것은 너무도 빤한 대답인 듯하여 “산책을 한다” “음악을 듣는다” “일기를 쓴다”는 말로 적당히 대답을 해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이유 없이 울적하고 시무룩하거나 글도 쓰기 싫고 삶에 대해 어떤 열정과 의욕이 느껴지질 않아 근심스러울 땐 무엇보다 먼저 동시를 즐겨 읽는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힘들거나 우울할 땐 동시를 읽으면서 밝은 마음을 찾아요!”하고 대답하려고 합니다.

아주 오래 전에 펴낸 산문집에 내가 소개했던 동시의 어떤 구절들이 좋아 기억했다가 깜빡 잊었으니 불러달라며 종종 전화를 걸어오는 독자들을 대하면 시의 ‘나눔 효과’에 매우 즐거운 마음이 되곤 합니다. 오늘도 저학년에 읽히면 좋을 동시들을 소개해달라는 어느 초등학교 여교사의 메일을 받고 아는 대로 답해주었답니다.

최근에 내가 친지들에게 자주 적어주는 동시는 ‘꽃을 보려면’인데 이 시를 읽으면 나날의 삶을 더 겸허하게 살고 싶은 ‘작은 꽃’의 마음이 됩니다.

꽃을 보려면 _박두순

채송화 그 낮은 꽃을 보려면
그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한다
그 앞에서
무릎도 꿇어야 한다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보인다


아기를 낳고 기뻐하는 부모들에게는 김광섭님의 ‘새 얼굴’을 자주 적어주곤 합니다. 이 동시를 읽으면 ‘아기들은 정말 그렇지! 나도 새 마음 새 얼굴로 살아가야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족과 친지의 아기 백일이나 돌을 축하할 적에 여러분도 고운 꽃다발이나 선물 속에 이 시를 살짝 곁들여 축하해 보세요.
   
새 얼굴 _김광섭

아기가 들어와
아침하늘을 얼굴로 연다
아기는
울고 나도 새 얼굴
먹고 나도 새 얼굴
자고 나도 새 얼굴
하늘에서
금방 내려 온 새 얼굴

요즘은 부산일보에 공재동 시인이 몇 줄의 소감과 더불어 소개하는 짧은 동시들을 읽는 기쁨이 큽니다. ‘공식’이란 동시는 어린 시절부터 친해온 친구에게 우정의 다짐으로 적어 보내도 좋고 '대숲 바람'은 산이나 숲을 산책할 적에 혼자 또는 여럿이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공식 _박일

짝꿍의 슬픔은
나눠 갖기로
웃음은 더해주기로
고민은 빼주기로
아무튼 짝꿍을
곱셈처럼 좋아하기로



대숲 바람 _박지현

대숲 바람은
언제 들어도
'쉬이' '쉬이'한다
아기 죽순
쑤욱 쑤욱
곱게
곧게 자라게
조용 조용 하란다
 
이 아름다운 초록빛 계절에 동시를 읽다 보면 마음도 한결 밝고 맑고 따스해지며 모국어에 대한 사랑도 조금씩 깊어질 것입니다. 여러 시인들이 노래한 동시들을 더 많이 찾아 읽고 나누는 우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몇 편의 동시들을 소개하였으니 고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고맙겠어요!


   월간<샘터>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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