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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흰구름 편지 -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삶
  작성일 : 2006-04-13

흰구름 편지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삶

글 이해인

 

오늘 아침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둥근 해를 바라보며 잠시 일손을 놓고 그 아름다움에 우리 모두 탄성을 질렀답니다.
또 하루 열심히 살아가라고 붉게 떠오르는 태양이 빛으로 재촉하는 것만 같았지요. “감옥에서 맞는 스무 번째의 성탄입니다.”로 시작하는 요셉의 편지를 받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죽음보다 무서운 삶의 시간들도 있더라는 ? 살아 보니 감옥이야말로 인생종합대학인 것 같더라는 그 말의 참뜻을 조심스레 헤아려 봅니다.


감옥살이 20년의 세월이 징벌이 아닌 은총의 준비 기간이었음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요셉, 차디찬 감방에서 보낸 그 20년 세월을 제가 어떻게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모범수에게만 주어진다는 지난번의 그 짧은 휴가는 뜻깊게 보내셨을 줄 압니다. 그 때도 잊지 않고 전화 주어 반가웠어요. 평소에도 많이 듣는 말이긴 하지만 날 더러 늘 건강하라는 말, 언제나 이웃과 함께 행복하라는 그대의 말을 새삼 뜻깊은 덕담으로 들으며 새해 새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요즘 저의 오른팔이 불편해 동네 정형외과에 다니면서 아픈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처음인데도 낯설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금방 친구가 되곤 하는데 아마도 서로서로가 비슷한 처지에 있기 때문이겠지요.

건강할 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아픈 사람들’이 좀 더 가까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사람이 남을 제대로 배려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새삼 절감하곤 해요. 말은 쉽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는 거지요.

우리 공동체의 노수녀님 두 분이 서로를 챙기는 자매적 우애는 늘 아름답게 보입니다. 눈이 좋은 한 분이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이 약한 동료를 위해 신문과 좋은 글을 읽어 주면 그분은 라디오에서 들은 이런저런 뉴스를 답례 삼아 들려주곤 하는데 어쩌다 저도 그 사이에 끼어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거들 때가 있답니다.

어디서나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위하고 챙겨 주는 모습은 가슴 찡한 감동을 줍니다. ‘선을 위한 성실함’이라는 말이 자꾸만 묵상 과제로 떠오르고 마음속에서 맴도는 요즘이에요.

 

그림·김점선 <수평선에 뜬 해>



늘 타성에 젖고 무디어지기 쉬운 우리기에 날마다 새롭게 선을 선택하고 실행하려는 성실함이 필요하고 이것만이 인간관계를 튼실하게 하며 삶에 기쁨과 평화를 가져온다고 믿습니다.

오늘 만난 의사 선생님은 ‘참으로 선하게 살다가 죽어야 하는데…’ 하며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날마다 의식적으로 다짐한다고 하였습니다. 늘 하는 수술이라도 첫 마음의 두려움을 지니고 기도하면서 참고도서를 다시 읽어보고 수술에 임한다는 그의 말이 신선한 여운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랑 가득하고 선하고 거룩해지기만을 자꾸 바라지만 말고 자신이 먼저 사랑 많고 선한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가 우선적으로 추구하고 실행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담 안에서의 남은 날들 동안 우선 몸의 건강 잘 챙기고 마음도 늘 밝은 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밝게 웃는 요셉의 모습, 제가 기대해도 되지요? 우리가 걸어야 할 삶의 여정에서 승리자가 되는 길은 ‘선을 위한 성실함’에 있다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깨우치며 우리 함께 노력하기로 해요.

제가 요즘 즐겨 읽는 <아미엘의 일기> 중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맺습니다.


아집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봐야 한다. 이것이 병이 주는 가르침이다. 다시 삶의 수레바퀴로 돌아가 너의 의무를 명심하고 출발하도록 하라. 이것이 바로 너의 양심과 이성이 부르짖는 외침이다. 인생은 짧고 위대하다. 인생은 신을 위해, 선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위해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삶이다. 성실해져라. 너의 영혼을 구제하라. 네 죽음의 잠자리를 위해 양심의 베개를 만들어 두어라.

 

 

 월간<샘터> 200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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