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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3월 - 철길을 닮아가라
  작성일 : 2005-03-31

 

 

철길을 닮아가라  


철길은 왜 하나가 아니고 둘인가?

길은 혼자서 떠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멀고 험한 길일수록

둘이서 함께 가야한다는 뜻이다


철길은 왜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고

나란히 가는가?

함께 길을 가게 될 때에는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를

늘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토닥토닥 다투지 말고

어느 한쪽을 기울지 말고

높낮이를 따지지 말고 가라는 뜻이다

철길은 왜 한번도 서로 만나지 않고

서로 닿지 못하는 거리를 두면서 가는가?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알맞은 거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서로 등을 돌린 뒤에 생긴

모난 거리가 아니라

서로 그리워하는 둥근 거리 말이다


철길을 따라 가 보라

철길은 절대로 90도 각도로

방향을 꺾지 않는다

왼쪽과 오른쪽을 다 둘러본 뒤에

천천히 둥글게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커브를 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도

그렇게 원만한 철길을 닮아가라

    
                                     안도현의 산문집 '사람'중에서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느새 3월입니다. 기차를 타고 다닐 일이 많다 보니 안도현 시인의 ‘철길’이란 시가 마음에 와 닿아 나누고 싶었답니다. 시의 내용에서처럼 진심으로 사랑하면서도 서로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는 현명함을 실천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듯 합니다.


정원엔 매화가 만개하였어요. 전국에 퍼져가는 재선충으로 말미암아 우리 소나무들도 새롭게 손질을 하여 지금은 잎이 하나도 없으나 어느 날 다시 그 푸른 잎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지요.

2월엔 수련착복, 첫서원, 종신서원식 등의 행사가 있고 인사이동으로 인해 정든 수녀님들과도 작별하는 아쉬움이 있었답니다. 식탁자리, 담화방 구성도 새롭게 하고 더러는 새로운 얼굴들과 다시 사귐의 기회를 가져야합니다. 지난 2.21일(월)부산교구 남천동 주교좌 성당에서 했던 봉헌의 날 행사에서는 제가 40분 정도 주제 강의를 했는데 무척 유익하고도 재미있었다고 이야길 하니 큰 부담을 갖고 준비한 만큼 흐뭇하였답니다. 수도연륜이 깊었건만 저는 내세울 것이 약점밖엔 없다 하였고, 1)날마다 새롭게 하느님을 선택하는 노력의 기쁨(시'수평선을 바라보며' 인용) 2)날마다 새롭게 사랑을 넓혀가는 노력의 기쁨(시'파도의 말' 인용) 3)날마다 새롭게 인내하는 노력의 기쁨(시'선인장'인용) 4)날마다 새롭게 고운 말을 쓰는 노력의 기쁨(시'나를 키우는 말'인용) 등 네 가지를 요약하여 이야기 하고 제가 쓴 '수도원에서'라는 기도시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지난 2월25일엔 우리 모두가 '미소천사'로 부르며 좋아하던 손님맞이 방 언덕방지기 김분다(예숙)수녀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20살에 입회하여 38살에야 겨우 수련착복을 할 만큼 병약한 몸으로 본가 휴가. 피난 등으로 뒤늦게 수련자가 되고 첫서원, 종신서원을 했지만 늘 기쁘게 사셨고 고통 속에서도 참 많은 사랑의 어록들을 향기로 남기셨기에 본받고 싶은 분이랍니다. 의례 객실에 계시겠거니 하고 오시는 손님들은 퍽도 서운하실 것 같습니다.
 

요즘 제 곁에 있는 책들은:

<내 영혼을 밝히는 물음>(르네 기통.심민화.백선희역/마음산책),<낮추고 사는 즐거움>(조화순 목사/도솔),<생명의 웨이브>(이영애/교음사),<곡선의 저녁>(이해웅/신생)<선물/보이지 않는 선물>(노영심/열림원),<슬픈 카페의 노래>(카슨 매컬러스,장영희 역/열림원)등입니다.


3월6일엔 11명의 지원자(새내기)들이 입회를 한답니다. 젊고 예쁜 후배들을 맞이하는 기쁨은 크지만 입회하는 날 그들이 가족들과 헤어지는 장면을 보는 것은 늘 괴롭더군요.


어느날, <작은 기쁨>이란 글이 배달되어 왔던데 무척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 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
 
                                   -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중에서 -


올 한해를 날마다 피정과 같이 살겠다고 결심을 하니 평범한 매일이 늘 새로운 선물로 보물로 여겨지는 기쁨을 맛봅니다. 늘 염려해 주시는 저의 건강은 괜찮습니다. 윗니5개를 새로하고 나니 가짜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편안하고 참 좋아요. 3월엔 밀양에 다시 한 번 언니 수녀님을 뵈오러 갈까 합니다. 언니를 만나면 마음이 무척 착해지니까요. 희망과 전진의 달 3월, 다시 시작하는 마음, 다시 일어서는 마음으로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길 비옵니다.
 
저도 3월에 수도생활을 시작하였기에 3월이 오면 가슴이 뛰고 설레고 그래요. 3월27일은 6년 만에 돌아오는 빠른 부활축일입니다. 부활축일도 미리 축하드릴게요. 안녕!

기도 안에 여러분을 기억하면서 감사드리는 제 마음에 벌써 봄을 노래하는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 . . (상략) 하이얀 까치 소리처럼 내가 먼저

누군가의 가슴 가까이 다가가 보았는가.

아아, 이제는 봄이라고 살아야겠다고

잠든 나뭇가지들을 흔들어 보았는가.

상큼한 치약 내음이 묻어날 것 같은 웃음으로

그 누구보다도 일찍 아침을 열어 보았는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자꾸 자꾸 편지를 띄워 보았는가. (하략)

  -이재호 시인의 '3월에 내리는 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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