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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5월 - 꽃이야기 하는 동안은
  작성일 : 2005-03-30

* 사람들이 서로 꽃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항상 아름답습니다.적어도 그 순간엔 누굴 흉보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아 좋아요.  해마다 꽃철에 꽃구경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옆에 있는 사람까지 행복해집니다. 세상에 살면서 꽃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는 우리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 이번엔 소식이 늦어....혹시 기다리셨는가요? 4.28-5.6일 경남 고성군 대가면 송계리에 있는 우리 수녀원에서 8박9일의 연중피정을 하고 왔답니다. 산 노을이 아름답고 새소리가 아름답고 비가 많이 와 물소리가 흐르는 곳에서 좋은 강론을 듣고 묵상도 하고 산책을 하는 시간은 참으로 아름다웠답니다.  가끔은 네잎 클로버를 찾기도 하고 들꽃과 이야길 나누기도 하고 마을의 저녁연기도 바라보면서 산책하는 시간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피정자 23명 가운데 제가 셋째 언니였으니 흐르는 세월 동안 덕은 아니고 서열만 높아졌네? 하고 혼자서 웃었답니다. 잘 익은 과일처럼 깊이 있고 고요한 이연학 수사신부님의 강론도 감동을 주었고 지원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공동체에 몸담고 사는 동료들의 허름하고 수수한 모습도 감동적이었으며, 우리를 위해 때마다 맛깔스런 식탁을 마련해 주신 우리 수녀님들의 모습도 감동을 주었지요. 

 

돌나물, 부추, 상추, 머위, 고구마...수녀님들이 농사지은 것들도 많이 나왔고. 마지막 날은 아카시아 꽃으로 만든   튀김까지 먹으려니 왠지 좀 미안하던데요. 여러분도 아카시아 튀김을 해 드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곳엔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회(남자수도회)도 있는데요. 여러분도 혹시 혼자서나 친구 몇 명과 같이 쉼이 필요하시면 이곳 소박한 모양의 개인피정집 <마리아의 마을>이라는 곳을 방문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참고로 홈페이지를 적어둘게요.(http://www.brothers.or.kr/osb)  바다는 없지만 둘레가 산이고 남녀수도자들이 함께 부르는 전례성가도 매우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 피정 동안 꿈도 많이 꾸었는데 세 가지만 공개하자면요: 돌아가신 성서학자 임승필(요셉)신부님을 얼핏 꿈에 보았고(피정지도사제가 이분이 번역한 성서를 사용하신 덕이라는 생각을 했고)  요즘 몸이 안 좋으신 저의 어머니가 얼굴에 붕대를 감은 모습으로 한 번 나타나셨답니다. 어머니는 평소에도 꿈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시지요. 또 어느 날 밤은 이라크의 한 어린 소년이 저를 총으로 겨누는 장면에서 문득 삶의 마지막을 절감하면서 그 아이를   품에 껴안으니 뜻밖에 그 애가 먼저 기절을 해 제가 들어가려던 집안으로 데려가 간병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나치시대에 숨어살던 유태인 소녀 안네 프랑크처럼  지금도 공포에 떨며 사는 많은 이들을 기억하며 잠시 전율하였습니다.

* 피정 끝나는 날은 자신의 죽음과 관련한(장례문화및 장기기증)설문지를 작성하는데 피정 중의 꿈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미래의 사람일을 알지 못하지만 일단 제게 주어진 장기기증서엔 심장에만 동그라미를 쳤답니다. 저의 신장과 눈은 그리 좋질 못하니까요. 피정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하여 주신 분들(특히 '민들레의 영토'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부끄러워 이야길 안 하려했지만 할게요. 5월2일(주일)에 비가 왔는데 저녁기도 끝나고 나서 워낙 미끄러운 고성 성당바닥에 제가 신은 얇은 나일론 양말이 걸려 넘어져 요란하게 타박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얼음찜질, 파스 붙이기, 부황 뜨기 등...옆의 수녀님들이 많이 도와주어 지금은 견딜 만하답니다. 혹시 뼈라도 부러져...병원신세 지고 피정도 제대로 못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였는데... 이에 비하면 타박상은 아무리 심해도 견딜만하여 ♬♪ 랄라라 노래를 불렀지요. 

 

이튿날 오른팔이 안 올라가니'이제 귀여운 율동?은 못하겠구나!'하며 상심을 했지 뭡니까. 그날 안경을 끼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이었나 하고 순간적으로 아찔하기도 하던데요. 97년 5월과 9월에 두 번이나 팔목 뼈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지낸 경험이 있어 그땐 뼈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하였고 이번엔 피멍이 든 살에 대한 묵상을 많이 하였답니다. 이 부분은 널리 소문 내지 마세요. '이 수녀님도 나이 드시니 별수 없군!'하시지 말고 '그만하시기 정말 다행이시네!'하셔야 합니다. 호호호...

 

* 피정을 다녀오니 성분도 치과가 (예전의 해인글방자리로)이미 이전을 했고 그동안 오랜 세월 정이 든 정원의 큰 나무들도 여러개 뽑혀있어(타당한 어떤 이유가 물론 있을테지만) 가슴이 서늘하고 마구 눈물이 나기도 했답니다. 사람들뿐 아니라 집,나무,꽃,동물,즐겨쓰던 가구나 소소한 물건들도 아무런 예고 없이 헤어지면 슬픔이 밀려오는 것 같습니다.

 

* 제가 아직 다는 못 읽었으나 곁에 둔 책들은: <지뢰 대신에 꽃을 주세요>(요 쇼메이 그림 야나세 후사꼬 글/청어람 미디어), <청춘의 문장들>(김연수/마음산책), <틱 낫한에서 촘스키까지>(존 스페이드 외:원재길역/마음산책), <작은 창 너머보이는 풍경>(김정선/성바오로), <거울은 천개의 귀를 연다>(김혜영/천년의 시작), <행복한 노년을 위하여>(소노 아야꼬:정성호 역/문학사상),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로저 로렌 블라트: 권진욱 역/나무생각), <회상>(엔도 슈사쿠/한은미 역/시아출판사)등입니다.

 

올 상반기에 분도 출판사에서 해인의 꽃시만 한데 모은 시선집이 하나 나올 것이고 현재의 작업이 끝나는 대로 그간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글모음 집이 나올 예정인데 후에 다시 알려드릴게요. 제가 번역한 틱낫한 스님의 동화 <<성자와 샘물>>도 지금쯤 아마 시중에 나와있을겁니다.

 

*  기도해 주세요: 5.29-30에 경기도 소사 은혜의 집에서 성소자들 피정이 있는데 오랜만에 제가 수도생활에 관심갖고 오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주제특강을 하기로 하였거든요. 또 5월이 다 가기 전 어느 날엔 김정식 로제리오 형제와 같이 소록도에 가서 문화특강을 한 번 하기로 하였는데 예전에 우리 수녀원에 함께 살던 자매님이 그곳에서 수십년간 일하다가 곧 은퇴한다면서 '꼭 한 번만 와 달라!'고   수차례 간청을 하여 이루어진 것이랍니다.

 

* 더 중요한 것을 더 중요하게 놓을 줄 알고 덜 중요한 것을 덜 중요하게 놓을 줄 아는 지혜를 구하자고. "필요한게 있어요?"하는 누군가의 물음에 "필요없는게 더 많은데요"하고 대답하던 스님이 생각난다며 좀 더 단순 소박한 마음과 태도로 순례의 길을 떠나자던 피정지도 신부님의 말을 되새기며 우선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소식을 적어보았습니다. 아직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지만 이번 피정기간에 제가 쓴 성모성월시도 후에 우리 수녀원 홈피에  올려두라고 할게요.


 

이렇게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여러분의 마음과 영혼에도 풀물이 가득 들어 싱그러워지시길 기원합니다. 얼마전 부산에 다녀간 박인숙님이 광안리 바닷가에서 스냅으로 찍은 구름수녀의 사진도 하나 얹어둡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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